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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을 지배하는 '시간의 손'…도킨스 신작 '불멸의 유전자'

연합뉴스

입력 2025.05.30 06:00

수정 2025.05.30 06:00

'이기적 유전자' 저자가 밝히는 진화의 비밀
생물을 지배하는 '시간의 손'…도킨스 신작 '불멸의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저자가 밝히는 진화의 비밀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출처=연합뉴스)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유적에는 시간이 층층이 쌓여 있다. 발굴하다 보면 지층에 따라 나오는 물건이 다르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다양한 유물들이 시차를 두고 땅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

유전자도 이와 비슷하다. 유전자에는 시간의 궤적이 담겨 있다.

인간의 유전자만 해도 바다생물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천 과정이 숨어 있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런 유전자를 담은 인체를 일종의 '사자의 유전서'(Genetic book of the dead)라 표현한다.

"당신은 하나의 책, 미완성 문학작품, 기술적 역사의 보관소다. 당신의 몸과 유전체는 오래전에 사라진 연속된 다채로운 세계들, 오래전 살았던 조상들을 에워싸고 있던 세계들에 관한 종합 기록물로서 읽을 수 있다."
도킨스의 신작 '불멸의 유전자'(을유문화사)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생물들의 유전자 지도를 저자는 '팰림프세스트'(palimpsest)에 비유한다. 이전에 쓰인 글 위에 다른 글을 겹쳐 쓴 양피지 원고를 의미한다. 도킨스는 양피지에 쓰인 시간의 흐름과 퇴적을 추적할 수 있는 글처럼, 유전자에 남겨진 정보를 통해 생물의 과거와 현재를 유추하고, 나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자의 유전서'에는 고대 선캄브리아 바다로부터 기나긴 세월의 모든 중간 단계를 거쳐서 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간의 환경들이 기술돼 있다"고 설명한다.

책 표지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책 표지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사자의 유전서'를 들춰보면, 생물의 위장, 의태(擬態)와 같은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모두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하기 위해 고안된 오랜 노력의 결과다.

가령 모하비사막에 사는 사막뿔도마뱀은 사막의 자갈·모래와 비슷한 색과 형태의 피부를 지녔다. 생존을 위한 위장 전술인 셈이다. 이에 따라 사막뿔도마뱀을 맨눈으로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막에서 태어나리라 예측됐기에 '생존과 번식하라'는 유전자 명령에 따라 그런 형태로 태어난 것이다. 일종의 유전적 예측인데, 만약 이런 유전적 예측이 어긋나 이들이 개활지에서 태어난다면, 눈에 띄는 색깔 탓에 천적인 맹금류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것은 자명하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종(種)을 이끈다는 유전자의 대명제는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인간은 지난 수억 년 동안 사족(四足) 상태로 기어 다녔다. 등뼈가 수평이어서 중력은 사지로 분산됐다. 그러나 진화적 관점에서 비교적 최근, 인간은 이족 보행을 시작했고 수평이었던 인간의 척추는 수직이 됐다. 중력은 척추에 집중됐고, 인간은 그때부터 허리 디스크에 시달리게 됐다.
비록 디스크는 얻었지만 이족 보행 덕분에 손이 자유로워진 인간은 문명을 일궜고, 이로 인해 지구에서 가장 번성한 동물이 될 수 있었다.

걷기 (출처=연합뉴스)
걷기 (출처=연합뉴스)

저자는 이 외에도 각종 동물, 식물, 균류, 세균, 고세균 등 생명체에 남겨진 유구한 진화의 흔적들을 살펴보며 그들의 생존 방식을 설명하고, 다가올 미래를 예상한다.


"자연선택이 매일 매시간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변이들까지 샅샅이 살펴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우리는 시간의 손이 기나긴 세월이 지났음을 가리킬 때까지 이 서서히 진행되는 변화를 결코 보지 못하며, 긴 지질 시대를 들여다보는 우리의 시야도 너무도 불완전하기에 그저 현재 생물의 형태가 과거에 존재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한음 옮김. 496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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