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암기 대신 밀대, 전정가위 들고 새 아침 맞는다"
폐광 앞둔 도계광업소…광부들의 인생 2막 계속 돼

[삼척=뉴시스]홍춘봉 기자 = “30년 동안 석탄을 캤는데 이젠 빵을 굽는다.”
지난 5월28일 강원 삼척시 도계평생학습센터. 도계광업소에서 한평생 갱도 안을 오갔던 김진수(가명·50대) 씨는 흰 제빵복을 입고, 로컬푸드를 활용한 디저트를 만든다. 반죽을 펴는 그의 손에는 여전히 갱도 작업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 손끝은 이제 생계와 열정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삶을 반죽한다.
1936년부터 89년간 운영돼온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는 2025년 6월, 문을 닫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렇지만 직장을 잃게 된 광부들은 이제 석탄이 아닌 ‘기술’을 향해 나아간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 강원도, 삼척시, 대한석탄공사가 3월 31일 폐광이직 대상자들을 위한 직업훈련 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4월부터 이직 대상 광부 100여 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맞춤형 직업훈련을 진행 중이다.
도계광업소에는 총 270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행정과 폐광정리를 위해 70여 명은 매일 출근하고 이 중 100명이 조금 넘는 이직대상이 직업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1차 훈련에서 가장 인기였던 과정은 ‘조경수 관리 및 설계 입문 과정’. 상지대학교가 운영하는 이 과정은 강원대 도계캠퍼스에서 열렸고, 25명의 광부들이 참여했다.
한 참가자는 “광산에선 나무를 볼 일이 없었는데 이젠 정원을 설계하고 싶다”며 “내 손으로 삶의 풍경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산림기능인 입문 과정’ 역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오랜 시간 지하에 묻혀 있던 노동이 이젠 숲과 자연 속에서 이어진다. 땀은 여전하지만, 탄가루 대신 나뭇잎과 흙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가장 많은 수요를 보인 분야는 ‘지게차 운전’이었다. 1차 24명, 2차 24명 등 총 48명이 교육에 참여했고, 현재까지 4명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기계는 익숙하다’며 자신감을 보인 한 교육생은 “갱도에서 착암기와 채탄 곡괭이를 들었던 손맛으로 지게차도 잘할 자신 있다”고 웃었다.
또 다른 인기 과정은 ‘제과제빵’. 삼척요리제과제빵직업전문학교에서 운영 중인 이 과정엔 1차 10명, 2차엔 무려 29명이 몰렸다.
특히 2차 교육은 하루 6시간, 총 5일간 집중적으로 진행되어 실습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진다. 제빵을 통해 창업의 꿈을 꾸는 이도 있다. “어릴 적부터 찐빵장사 하는 게 꿈이었다”는 50대 광부의 말은 웃음 속에서도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특이하게도 이산화탄소(CO₂) 용접 교육에는 신청자가 없었다. 대신 드론 조종과 영상 촬영과정엔 20명이 참여해 “광부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현장에서 드론을 조작하던 한 교육생은 “기술만 배운다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며 “갱도에서 촛불로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카메라로 풍경을 담는다”고 말했다.
이번 직업훈련은 단순히 ‘일자리’를 위한 교육이 아니다. 지난 시간을 딛고 미래를 열어가는 ‘생애 전환의 기술’이다.
산업의 쇠퇴가 개인의 쇠퇴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가는 ‘교육’이라는 다리를 놓고 있다. 훈련에 참여한 광부들은 단절이 아닌 연결, 폐광이 아닌 출발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다.
도계광업소는 문을 닫지만, 광부들의 삶은 계속된다. 지게차, 조경, 제빵, 산림, 드론 등. 이 모든 것이 그들의 ‘두 번째 일터’이자 ‘두 번째 꿈’이다. 인생 2막의 시작으로 알리는 셈이다.
삼척시 관계자는 “이번 훈련은 지역 고용 전환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광부들이 새로운 기술로 지역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casinohong@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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