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전쟁서 글로벌 투자사 직원 연기

[파이낸셜뉴스] “자영업을 하다 가세가 기울었던 그 시절, 새벽마다 일용직 근로를 찾으러 나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당시엔 정말 우리 집이 힘들구나 싶었지만, 정작 아버지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진 못했어요. 그게 지금도 죄송해요.”
영화 ‘소주전쟁’의 배우 이제훈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제훈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만나 “제가 중학교부터 대학을 다니던 때, 아버지가 일용 노동자로 일하는 힘든 상황을 직접적으로 겪었기에 (영화가) 더 실제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영화 ‘소주전쟁’은 1997년 진로그룹 파산 사태를 모티브로 한 영화. 외환위기 속에서 무너져가는 1등 소주 회사 ‘국보’를 노리는 글로벌 투자사와 재벌 회장의 리더십 부재, 당시 우리사회 기득권층의 도덕적 해이가 복합적으로 얽힌 가운데 벌어지는 치열한 두뇌 게임과 인간 군상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이제훈은 성공을 최우선시 하는 글로벌 투자사 ‘솔퀸’ 직원 '인범'을 연기했다. 그는 유해진이 연기한 국보의 재무이사 종록과 우정과 배신 사이를 오간다.
이제훈은 야심을 숨긴 채 종록에게 접근하지만, 종록과 소주 한잔을 기울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갈등에 휩싸이는 인물이다. 그는 “인범은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종록을 보며 위로해주고 싶은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며 “이중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인물로서 그 갈등이 대본에서 내가 매력을 느낀 핵심 포인트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장면이 편집되면서 최종 완성본에는 그 심리가 잘 드러나진 않는다. 어느 정도 추정만 될 뿐이다. 이제훈은 이에 대해 “아버지를 투영하며 갈등하는 장면들이 빠져서 아쉽지만, 종록이라는 인물을 통해 관객들이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는 이날 선배 유해진에 대한 애정도 보였다. 특히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한국영화를 집중적으로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는 그는 “당시 한국영화에서 유해진이 빠진 작품을 나열하면 한국영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중요한 시절을 관통해 현재에 이른 위대한 배우”라고 평했다. “이번에 함께 해 진짜 영광이다. 또 형은 닮고 싶은 사람이다. 형처럼 편안하게 주위를 웃게 만들고, 같이 있어도 지루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극중 인범처럼 술은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도 이번 영화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 특별 제조한 '탑소주'를 나눠 마시며 금방 친해진 일화를 떠올리며 "처음 만난 사이도 금방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게 만드는 게 소주의 매력인 것 같다"며 웃었다.
술자리 최고의 안주를 묻자, 그는 “신해철”을 꼽았다. “신해철과 넥스트 노래 들으면서 자랐어요.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는 최고의 안주죠.”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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