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소주처럼 쓰기만 했던 외환위기, 그시절 회사원의 애환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6.02 18:07

수정 2025.06.02 18:07

IMF 당시 진로그룹 모티브한 ‘소주전쟁’
개봉후 첫 주말 박스오피스 3위 자리에
유해진(왼쪽)과 이제훈이 출연한 영화 ‘소주전쟁’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유해진(왼쪽)과 이제훈이 출연한 영화 ‘소주전쟁’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1등 국민소주를 만들던 진로그룹은 왜, 어떻게 파산했나. 1997년 IMF 당시 유동성 위기에 몰린 한국 기업을 싼값에 집어삼키려던 글로벌 투자회사의 탐욕이 원인인가. 아니면 재벌 2세의 경영 능력 부재와 기득권층의 도덕적 해이가 잘못이었을까.

1997년 진로그룹 파산 및 인수전을 모티브로 한 영화 '소주전쟁'이 '하이파이브'와 '미션 임파서블8'에 이어 개봉 첫 주 주말 박스오피스 3위로 출발했다.

유해진·이제훈이 주연한 이 영화는 실화 모티브나 허구의 주인공을 내세워 1등 소주회사 국보의 파국을 다룬다. 한 회사의 운명을 둘러싸고 두뇌 게임 서바이벌 예능 '데블스플랜'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두 남자의 대립과 선택을 통해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한국 사회의 달라진 가치관도 드러낸다.

1등 소주 회사 국보 그룹의 재무이사 종록(유해진)에겐 직장은 내 인생과 같다.

퇴근 후 동료들과의 술 한 잔이 인생의 낙인 그는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회사를 살리려고 고군분투한다. 반면 글로벌 투자사 솔퀸 직원 인범(이제훈)은 성공이 최우선이다. 그는 야심을 숨긴 채 국보 그룹의 위기를 해결해줄 것처럼 종록에게 접근한다. 둘은 점차 소주를 매개로 가까워진다.

유해진과 이제훈의 연기가 돋보이는 '소주전쟁'은 반전과 스릴의 비즈니스 드라마면서 우정과 배신 사이를 오가는 두 남자의 성장담이다. 진로 그룹 인수전에 대해 속속들이 몰랐던 관객이라면 이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또 직장인이라면 종록과 인범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전 세대라면 종록의 인생과 눈물이 남일 같지 않을 것이다. 후반부 인범이 당하는 인생의 쓴맛은 달라진 기업문화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해진은 지난달 29일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종록이 왜 저렇게 사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저로선 공감이 갔다"며 "오히려 인범이 이해가 안돼서 나 역시 올드 세대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록이 온기 없는 집안에서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장면을 찍을 땐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눈물이 났다"고 촬영 비화도 밝혔다.

이제훈은 명문대 출신의 능력 있는 직장인 역할에 맞게 세련된 외모로 캐릭터의 몰입도를 높일 뿐 아니라 영어 대사도 능숙하게 소화한다. 그는 "영어 대사를 코칭해주는 선생님에게 세세하게 지도를 받았고 대사도 달달 외웠다"고 말했다.

영화 '빅쇼트' 등에 출연한 할리우드 배우 바이런 만은 극중 이제훈의 상사로 분했다. 그는 "캐릭터는 허구지만 실화 모티브라서 배우들 모두 실제 존재했을법한 인물로 보일 수 있게 신중하게 감정을 전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영화가 단지 재미를 주는데 그치지 않고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고 입을 모았다.


유해진은 "마치 숙취가 남듯, 생각할 거리를 준다"고 말했다. 이제훈은 "일과 삶에 있어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갈지 명제를 던진다"고 거들었다.
만은 "한 나라의 문화, 가치, 생각에 대해 다룬다"며 "동서양의 서로 다른 가치도 보여준다"고 부연했다.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