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밀집지 장마철 대비 허술
빗물 막을 모래주머니 거의 없어
"지원책 정보 부족" 지적 잇따라
전문가 "지자체가 현장 잘살피고
시민도 필요하면 적극 신청해야"
빗물 막을 모래주머니 거의 없어
"지원책 정보 부족" 지적 잇따라
전문가 "지자체가 현장 잘살피고
시민도 필요하면 적극 신청해야"

#. 장마철을 앞둔 서울 동작구 상도역 2번 출구 인근 주택가. 약 110m 골목 내에 있는 건물 12곳 중 반지하는 8곳이었지만, 물막이판이 설치된 건물은 2곳에 불과했다. 비가 조금만 세게 오면 창문을 타고 물이 들이칠 수밖에 없음에도 방범창과 사생활 보호 가림막에만 의지한 상태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오히려 태평했다. 대학생 최모씨(23)는 "(물막이판 설치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오늘 가서 설치돼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오는 10일부터 제주도를 시작으로 장마전선이 북상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습 침수 지역도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시민 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대응책을 촘촘히 설계해도 주민 안전의식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지원 확대와 함께 시민 안전불감증이 개선돼야 침수 사고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1일 각 지자체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근 장마철 집중호우에 대비하기 위해 관악·동작·영등포구 등 반지하 밀집 지역 골목 15곳에 실시간 수위를 감지하는 침수경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갑작스럽게 몰리는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자연형 저류지인 '빗물그릇'도 기존 7곳에서 12곳으로 늘리고, 올해 강남역과 도림천 등지에 '대심도 빗물배수터널(빗물을 저장했다가 배수하는 대규모 방재시설)' 역시 착공할 계획이다.
반면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5년 간 서울 내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를 입은 지역 인근 상인·거주민들은 이 같은 대응책에 대한 정보 자체가 부족했다. 또 개별적 침수 대비책도 전무했다.
최근 강남역 사거리에 편의점을 개업한 점주 조모씨(55)는 "이쪽 지대가 낮아서 침수에 취약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3년 전처럼 비가 오겠나' 하는 생각에 물막이판이나 모래주머니를 준비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차수판'이라고도 불리는 물막이판은 건물 출입구나 반지하 주택 창문 등에 설치하며, 모래주머니와 함께 집중호우 발생 시 빗물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 대표적인 침수 대응 방안으로 꼽힌다.
근처에서 샌드위치 상점을 운영하는 점주 송모씨도 특별히 준비한 것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대응책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언론을 통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하니 (정부를) 믿고 있다"고 밝혔다. 2022년 폭우는 이 가게가 있는 곳까지 범람했다.
반지하에 물막이판 설치가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고가인데다, 정부 지원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폭 6m에 길이 1.5m 기준 스테인리스 재질 물막이판을 설치하려면 800만원에서 1000만원가량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 작동 방식을 선택하면 4500만원가량을 써야 한다.
앞서 서울시는 참사 이듬해인 2023년 지하주차장 침수 예방을 위해 물막이판 설치를 일회적으로 지원했으나, 개별 공동주택은 각 단지에서 조성한 장기수선충당금으로 물막이판을 설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반지하 주택의 경우 소유자나 세입자가 동의를 해야만 지자체가 설치를 지원해줄 수 있는 구조지만 침수 우려 지역 낙인 혹은 집값 하락을 우려해 설치를 원하지 않는 사례도 다수다.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되면 물막이판 설치는 의무다. 국가보조금도 일부 지원된다. 하지만 상습 침수 구역 중 한 곳으로 지목되는 관악구와 동작구는 아직 지정되지 않고 있다. 이들 지역은 반지하 세대가 많은 곳으로 폭우 시 침수 피해가 클 수밖에 없지만,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되면 건축법상 건축행위 제한 지역으로 정해지는 등 재산권에 대한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어 주민 반발이 거세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개인의 경우 물막이판 등 침수 예방 안전장치 설치를 지자체에 적극 신청해야 한다"며 "지자체는 시민들이 신청하길 마냥 기다리기보다 현장에 나가 직접 물막이판 설치 여부를 조사하고, 빗물배수터널 등 중장기적인 대응책은 지자체장이 바뀌더라도 연속성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평소 대피소 위치나 안전수칙 등을 숙지하고, 집 주변이나 상가 주변 배수구가 비상시에 잘 기능할 수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한편 물막이판 등 침수 대응책에 적극 투자할 필요가 있다"면서 개인의 주체적 재난 대비를 주문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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