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칼럼

[기고] 디지털 방코르, 외환 플랫폼 대전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6.02 18:34

수정 2025.06.02 18:34

오늘날 외환시장은 달러, 유로, 엔화 등 소수 통화에 과도하게 집중된 비대칭 구조다. 이들 주요 통화의 정책은 무역과 자본 흐름을 통해 글로벌 유동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달러는 결제와 정산 모두에서 절대적 지위를 차지해왔지만, 최근 미국의 재정 불안과 지정학적 리스크는 그 신뢰 기반을 흔들고 있다. 글로벌 거래가 특정 국가의 정치·재정 조건에 좌우되는 한, 외환시장은 시스템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디지털 방코르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각국의 준비자산과 경제 규모에 비례한 방코르 통화 할당량을 설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실시간 정산을 지원하는 글로벌 유동성 인프라다.

방코르 통화는 중앙은행만 직접 보유할 수 있으며, 민간 활용을 위해 '디지털 방코르 결제 토큰(Wrapped Bancor)'이 별도로 발행된다. 이 토큰은 각국 규제기관이 승인한 온체인 거래소를 통해 법정통화 또는 스테이블코인과 교환 가능하며, 글로벌 거래는 동일한 규칙에 따라 자동 집행된다.

기업 간 국제 거래에서 수취한 토큰은 적격 거래소에서 법정통화로 환전되며, 거래 기록은 즉시 온체인에 등록된다. 기존 해외 결제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를 통한 송금 명령과 외환동시결제시스템(CLS)을 거쳐야 정산되며, 평균 2일이 소요된다. 디지털 방코르는 이 중개 절차를 구조적으로 단축하고, 지연에 따른 시스템 리스크를 제거한다.

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 블록체인법학회 부회장
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 블록체인법학회 부회장

이 시스템은 결제뿐 아니라, 국가 간 방코르 계정의 잔고를 자동 조정하는 기능도 포함한다. 예컨대 A국 기업이 B국 기업에 결제하면, A국 중앙은행의 방코르 계정에서 금액이 차감되고 B국 계정에 동일한 금액이 추가된다. 무역흑자가 일정 기준을 초과한 국가는 초과 자산의 일부가 동결 또는 소각되며, 반대로 적자국은 사전 정의된 조건을 충족할 경우 유동성 보조를 받을 수 있다. 이 지원은 각국의 준비자산, 외환 보유고, 정산 이력 등을 반영한 가중치 기반 메커니즘을 통해 분배된다.

각국 통화의 상대 가치를 실시간 반영하기 위해, 디지털 방코르는 각국의 온체인 거래소 및 정산 노드와 직접 연동하여 환율 정보를 확보한다.

이를 바탕으로 각국 계정의 잔액과 무역수지 흐름을 분석하고, 방코르 토큰의 교환 비율과 발행 한도를 자동으로 조정한다. 유입 자금이 급증할 경우에는 발행을 제한하고, 반대로 유출이 클 때는 담보 요건을 강화함으로써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한다. 환율, 공급량, 담보 비율 간의 상호작용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이 메커니즘은, 글로벌 유동성의 불균형을 흡수하고 외부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디지털 방코르는 글로벌 유동성의 순환 원리를 코드화한 정산 시스템이다.
특정 통화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도록 설계됐으며, 프로그래밍된 합의 구조를 통해 다자 간 신뢰를 구현한다. 디지털 방코르가 글로벌 거래의 표준 계산 단위이자 정산 인프라로 자리 잡는 순간, 우리는 기존 기축통화 체제의 구조적 불균형을 넘어, 유동성이 실물경제와 무역수지 흐름에 따라 스스로 조정되는 새로운 통화질서를 실현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전환을 설계할 시간이다.

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 블록체인법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