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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 칼럼] 청년들을 뛰게 하라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6.02 18:45

수정 2025.06.02 21:30

그냥 쉬는 청춘 50만 시대
기득권 사라져야 길 열려
일자리 반드시 늘려내길
최진숙 논설위원
최진숙 논설위원

"하룻밤 사이 인간 노동력이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될 것이다." 최근 이런 섬뜩한 경고문을 날린 이는 미국 오픈AI 대항마 앤스로픽의 최고경영자(CEO)인 다리오 아모데이다. 정확히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으나 머지않은 일이라고 장담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AI 투입 하루 만에 사무직 일자리 절반이 사라진다.

믿거나 말거나일 수 있겠으나 아모데이의 예상이 국내에서 현실이 된다고 가정해 보자. 머지 않은 어느 날 아침 AI 로봇들이 회사로 들이닥치는 순간 폭망하는 쪽은 현직 정규 근로자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천하의 AI라고 한들 노조의 우산을 받쳐든 기존 인력을 단번에 위협할 초법적 힘은 없다. 아직 시장에 당도하지 못한 미래 근로자, 청춘들에게 돌아갈 자리가 AI 진입 로드맵에 따라 봉쇄됐을 공산이 크다.

대학 졸업장만 쥐고 있으면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차를 끌고 와 직접 모셔가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 '한강의 기적'이 취업전선에도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던 때다. 인사 담당자들은 입사권유 특강 경쟁까지 벌였다. 상경대생이 섭외 1순위였다. 1명당 5~6개 업체가 달라붙었다. 고도성장기 1980년대를 지나며 대규모 대졸 정기공채 시대가 막을 올린다. 기업들이 주로 원하는 인재상은 협력, 인화, 성실 세가지였다. 기업에는 범용 청년인재가 넘쳐났다.

'학생들의 선택을 기다립니다'류의 기업 PR광고는 1990년대 전반기까지 계속됐다. "노래방 점수가 몇점이었느냐"가 면접 첫 질문이었다는 인간미 넘치는 회사 이야기가 광고로도 나왔다. 이 훈훈한 풍경이 자취를 감춘 것은 아시다시피 외환위기(일명 IMF)를 겪으면서다. 대졸 신입 채용문이 바늘구멍이 됐고, 청년실업이 뜨거운 이슈가 된 것도 이때부터다.

청년들의 기나긴 고통의 터널은 고학력 출신이 거듭 쏟아져나온 것과도 관련이 없을 수 없다. 풍요의 시기 직장을 골라잡았던 세대의 자녀들은 너나없이 대학에 갔다. 청년실업의 골이 깊어지던 2000년 초반 직장 내 대졸자 비율은 30%, 2020년대 들어서자 50%에 육박하더니 지난해 아예 50%를 넘어섰다.

국내 일자리 태반을 차지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이 사람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던 시기도 이때와 맞물린다. 눈 높아진 대졸 취준생에게 지방 중기의 험난한 업무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지금 서울만 벗어나면 공장 인근 외국인 기술자들을 동네에서 심심찮게 본다. 이게 그런 이유다. 이제 중기는 외국인 없이는 공장을 못 돌린다.

총체적으로 엇박자인 우리의 인력실태를 돌아본다. 세계는 AI대전이 한창인데 전쟁에 내보낼 젊은 기술인재는 태부족이고, 의료인 지망 낭인들은 도처에 깔렸고, 가방끈만 늘리다 '그냥 쉬는' 청년인구는 50만명을 넘어섰다. 대기업에선 정작 필요한 인재를 못 찾아 채용을 못 늘리고, 그 대신 노조 철갑을 두른 풍요의 세대만 정년을 채운다. 쉬는 청년은 끝내 눈을 못 낮춰 자발적 장기백수 신세가 된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지만 이 불균형을 깨지 못하면 0%대 성장은커녕 마이너스도 못 면한다.

청년을 뛰게 할 정답은 대부분 알고 있다. 기업이 벽돌 찍어내듯 고연봉 일자리를 쏟아내면 되겠지만 이게 쉽지 않으니 전 부문 개혁을 말하는 것이다. 풍요의 세대만 누리는 무차별 정년연장 입법 논의와 때 되면 무조건 오르는 호봉제, 이것만 깊이 숙고해 방법을 찾아도 길이 있다. 일자리 편견, 학력 차별은 어디에도 쓸 데가 없다. 선거 막바지 터져나온 '고졸 출신이 갈 수 없는 자리' 운운한 유명인의 발언을 듣는 순간 손이 떨렸다. 상대방 후보 부인을 공격하다 튀어나온 우발적 발언이었겠으나 자신의 평소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저급한 사고가 부끄러움을 모르면 대졸자 눈엔 '대졸이 가선 안 되는 자리'만 보일 것이다.

투표일 아침이 밝았다.
후보들은 하나같이 일자리와 성장을 우선으로 외쳤다. 말한 만큼이라도 행동으로 보여달라. 그 많았던 청년들을 다시 뛰게 해달라.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