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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이재명 대통령의 과제

노동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6.04 18:46

수정 2025.06.04 18:46

가시밭길 헤치고 대선 승리
집권 넘어선 통치전략 필요
통합과 경제에 국정 중점을
노동일 주필
노동일 주필
치열한(?) 선거전이 끝났다. 선거 후엔 으레 '치열한'이란 말을 쓰지만 이번에는 의문부호를 붙일 수밖에 없다. 선거에서 구도가 가장 중요하다면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일방적이었다. 느닷없는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조기'대선이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무거운 족쇄를 발목에 달고 뛰는 격이었다.

선거보다 당 내부 단합이 더 힘겨워 보였다. 과학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기적이라고 한다면 김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그런 것이었다.

정치는 결과로 말한다. 경위야 어떻든 승리한 이재명 대통령에게 축하를 보낸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첩첩산중 사법리스크를 헤치고 결국 목적을 이룬 집념이 승리의 원동력일 것이다. 인수위도 없이 취임한 이 대통령 앞에는 엄중한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가시밭길을 지나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에게 대통령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이 대통령의 우선 과제는 '선거전'에서 탈피하는 일이다. '내란종식'은 선거 프레임이었다. 승리 기여도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효과가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강을 건넌 후에는 배를 버려야 한다. 이 대통령 당선으로 이른바 내란은 끝이 났다. 윤 전 대통령 등 책임 있는 자들의 법적인 처벌을 기다리면 된다. '적폐청산'에 이어 내란종식 또한 국민 사이 갈라진 골을 더 깊게 만드는 부정적 구호이다. 마상득지 마상치지(馬上得之 馬上治之). 말 위에서 권력을 얻을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한 고조 유방의 고사이다. 정권을 차지하는 집권전략과 나라를 경영하는 통치전략은 달라야 한다는 교훈이다. '내전' 운운할 정도로 심각한 국민적 갈등을 그대로 둔 채 나라가 전진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재명 정부 국정의 최우선 순위는 '국민통합'이어야 한다.

"문제는 경제야." 그 어느 때보다 더 절박한 구호이다. 우리는 1·4분기 -0.2% 역성장을 경험했고, 한국은행 등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0.8%로 대폭 낮추었다. 트럼프발 불확실성도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도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퍼펙트 스톰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서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전망도 나온다. 식어가는 성장엔진을 다시 가동시킬 수 있는 혁신적 제도개선 없이는 정부가 돈을 쏟아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대통령의 숙제'(한지원·한빛비즈) 저자는 말한다. "경제가 흐르는 물이라면 민주주의는 물을 담는 그릇이다. 경제는 주어진 조건에서 생산을 최대화할 때 성장한다. '민주주의'는 공정한 제도를 만듦으로써 국민과 자원이라는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끌어낸다." 국가의 역할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다. 민주주의의 작동 여부에 따라 비슷한 인구와 자연조건을 가진 나라 사이에서도 경제적 성과가 크게 달라진다.

이 대통령은 유세 과정에서 "국민에게 공짜로 (돈을) 주면 안 된다는 희한한 생각"과 "나라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비판했다. 유권자들이 그래서 선택한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건지는 알 수 없다. 정부 재정이 필요한 경우가 물론 있다. 하지만 나라의 근본적 역할이 단순히 국민에게 돈을 나눠주는 건 아니다. "모든 인류가 그들의 본성을 계발하고 다양한 특성을 발현할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창출"하는 제도를 만드는 게 정부의 일이다. 미국·일본 등 기축통화국마저 막대한 재정적자에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보아야 한다.

'메멘토 모리.' 로마 시절, 전쟁에 승리하고 귀환하는 장군 옆에서 이 말을 외치도록 했다고 한다. '죽음을 기억하라.' 한순간의 승리에 도취하여 자만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말이었다.
이 대통령은 천하를 얻은 기분일 것이다. 지금 어울리지 않아 보여도 퇴임으로 시점을 옮길 것을 권하고 싶다.
"쇠락의 길로 들어서던 대한민국이 이재명 대통령 시기에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행복한 퇴임 대통령이 되지 않겠는가.

dinoh786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