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아이 가방에 녹음기 넣어 '몰래 녹음'…대법 "증거능력 없어"

서민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6.05 14:45

수정 2025.06.05 14:45

초등교사, 녹음파일 증거로 아동학대 혐의 기소
1·2심 유죄 판단…대법 파기환송 후 재상고심서 무죄 확정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부모가 아이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교사 발언을 몰래 녹음했다면, 해당 녹음파일을 형사재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5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의 아동학대 가중처벌)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A씨는 2018년 전학 온 B군에게 "학교를 안 다니다 온 애 같다", "학습 훈련이 전혀 안 돼 있다"라고 말하는 등 정서적 학대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쟁점은 A씨의 발언이 녹음된 파일과 녹취록을 증거로 인정할 수 있는지였다. A씨의 발언은 B군의 부모가 B군 가방에 넣어둔 녹음기에 녹음됐는데, 이에 대한 증거능력을 두고 판단이 엇갈렸다.



당초 1심은 "초등학교 담임교사로서 학생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었음에도 단기간에 반복적으로 정서적 학대 행위를 저질러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일부 혐의만 인정해 벌금 500만원으로 감형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해당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로 판단이 뒤집혔다.

파기환송심은 피해아동 부모가 몰래 녹음한 피고인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이자,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하므로 통신비밀보호법상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해 청취할 수 없으며, 불법감청에 의해 얻은 내용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피해아동 부모가 피고인의 아동학대 행위 방지를 위해 녹음에 이르게 됐고, 피해아동의 보호를 위해 녹음 외에 별다른 유효 적절한 수단이 없었으며, 아동학대 범죄는 사회적 해악이 중대하다는 등의 사정들을 이유로 녹음파일 등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판결에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이날 재상고심에서 "원심 판단에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웹툰 작가 주호민씨 아들에 대한 특수교사의 아동학대 사건을 비롯해 유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씨 아들 관련 사건에서도 부모가 몰래 녹음한 수업 내용이 증거로 제출된 바 있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특수교사에게 벌금 200만원의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지만, 2심은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