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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밀수용 여전·교정행정이 법 못따라가…예산·인력 확대해야"

연합뉴스

입력 2025.06.08 08:08

수정 2025.06.08 08:08

'감옥법령집' 재개정판 낸 강성준 활동가 "국가시설에서라도 인간답게"
"과밀수용 여전·교정행정이 법 못따라가…예산·인력 확대해야"
'감옥법령집' 재개정판 낸 강성준 활동가 "국가시설에서라도 인간답게"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교도관들(2006년) (출처=연합뉴스)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교도관들(2006년)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클릭 몇 번으로 헌법·형법·민법·상법·형사소송법·민사소송법 등 이른바 육법은 물론 각종 판례까지 볼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두툼한 종이책으로 법령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

수형자·미결수용자·사형확정자 등 법률과 절차에 따라 교도소·구치소 등 교정시설에 갇혀 있는 수용자들이 그렇다.

과거에는 대법전이나 소법전처럼 법률을 정리한 서적 출판이 활발했지만,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런 책들이 귀해지면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수용자들은 법률 정보에 접근하기가 더 어려워진 셈이다.

이들을 위해 천주교인권위원회가 펴낸 책이 '수용자를 위한 감옥법령집'(이하 '감옥법령집')이다. 2013년에 초판을 냈고, 2019년에 개정판을 발간한 데 이어 최근에는 4·9통일평화재단과 협력해 제3판을 발행했다.



책 표지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책 표지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발간 실무 작업을 한 강성준(50)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를 만나 '감옥법령집'을 거듭 펴낸 이유를 들어봤다.

"수용자들이 정보통신기기를 아예 소지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구치소나 교도소) 안에서 법령에 어긋나는 일을 당해 권리 구제 절차를 밟고 싶어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현행 법령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그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죄를 지었으니 당해도 싸다'는 쪽이 수용자를 바라보는 세인(世人)의 시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천주교인권위원회와 4·9통일평화재단은 "인간은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고 그것은 갇힌 자들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역설한다. 강 활동가는 부당한 처우를 묵인하면 결국에는 교화나 교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강성준(50)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출처=연합뉴스)
강성준(50)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출처=연합뉴스)

"만약 수용자들이 국가 운영하는 공간(교정시설)에서도 인간다운 취급을 받지 못한다면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 뒤 다른 시민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게 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교정 시설 내 수용자 관리 원칙 등을 규정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은 '수형자의 교정교화와 건전한 사회복귀'를 법률의 목적 중 하나로 천명하고 있다.

이 책에는 구금된 이들을 위한 대표적인 국제규범인 '유엔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넬슨만델라규칙)과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등 40건의 법령이 실려 있다.

아울러 정보공개청구,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고소·고발, 국가 배상 청구, 행정소송, 헌법소원 등 수용자가 침해된 권리를 구제받는 데 도움이 되는 제도에 대한 안내도 담았다.

수용자 태운 교정당국의 호송 차량 (출처=연합뉴스)
수용자 태운 교정당국의 호송 차량 (출처=연합뉴스)

강 활동가의 개인적 경험도 '감옥법령집' 발간과 관계가 있다.

그는 대형마트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시위하다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12년 벌금 70만원의 판결이 확정됐는데 벌금 납부 대신 하루 5만원으로 환산되는 노역을 택했다.

열흘 남짓 구금 상태로 노역하고 풀려난 강 활동가는 구치소가 좁은 공간에 과도하게 많은 수용자가 머물도록 한 것이 위헌이라는 점을 확인해달라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사건을 심리한 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강 활동가가 겪은 과밀 수용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 것으로 위헌"이라고 2016년 12월 결정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은 수용자를 독거(獨居·독방) 수용하되 시설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여러 명이 한방을 쓰게 할 수 있다고 예외를 두고 있다. 하지만 헌재는 1인당 가용 면적이 1.27㎡에 불과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 구금한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평가한 것이다.

강성준(50)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출처=연합뉴스)
강성준(50)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출처=연합뉴스)

다만 헌재 결정 이후에도 구치소·교도소 부족으로 인해 과밀 수용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작년 말 부산구치소가 수용자 포화상태를 거론하며 '수사기관은 구속영장 청구를 숙고하고, 법원은 보석이나 구속집행정지 등 석방 요청에 적극적으로 협조해달라'는 취지의 협조 공문을 보내는 일도 벌어졌다.

감옥법령집은 과밀 수용에 대한 헌재의 결정 요지를 비롯해 수용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사례를 함께 소개했다.

이쯤 되면 교도관을 비롯해 교정시설 종사자 입장에서는 '감옥법령집'이 상당히 껄끄러운 출판물로 여겨질 수 있다. 강 활동가는 구조적인 측면에 주목했다.

"교도관을 괴롭히기 위한 책은 당연히 아닙니다. 왜 그런 느낌이 들까 생각해 보면 그것은 교정 행정의 현실이 법령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원칙대로 해달라는 요구가 교정 행정 종사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법령이나 지침 등이 규정하는 수용자 처우를 실행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출처=연합뉴스)
천주교인권위원회 (출처=연합뉴스)

예를 들면 법무부 예규인 '수용자 피복관리 및 제작·운용에 관한 지침'은 수용자의 평상복을 여름옷, 봄·가을옷, 겨울옷으로 구분하고 1인당 1벌씩 지급하되 그 사용기간을 1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이들 옷을 교환해줘야 한다.

강 활동가는 "교환 주기가 됐는데 옷을 바꿔주지 않으면 수용자는 큰 고통을 겪을 수 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는 교도관이 바꿔주기 싫어서 그렇다기보다는 확보된 자원이 없으니까 그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감옥법령집'은 법령이 요구하는 수준을 맞출 수 있도록 예산이나 인력 확보를 간접적으로 촉구하는 셈이라며 "저는 교도관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 활동가는 "인력이나 예산을 교정 분야에 더 많이 투입해 재범을 방지하는 효과를 낸다면 사회적으로 더 큰 이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한 걸음 나아가 '감옥법령집'이 수용자들이 지니는 의구심을 해소하고 법질서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는 매개체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수용자들은 교도관이 나에게만 이렇게 하는 것인지, 즉 나만 차별받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감옥법령집'을 보면 역으로 제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런 책을 법무부가 먼저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이 펴낸 수용자 관련 서적 (출처=연합뉴스)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이 펴낸 수용자 관련 서적 (출처=연합뉴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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