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IB 교육과정 연계로 인기 높아 학생 수 급증
교과서 없이 IB가 제시한 6가지 '초학문적 주제'로 융합교육
[제주형 자율학교] ③ 학생·학부모·지역사회와 교육 성과 나누는 표선초중·고 IB 교육과정 연계로 인기 높아 학생 수 급증
교과서 없이 IB가 제시한 6가지 '초학문적 주제'로 융합교육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지난 4일 오후 4시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표선초 체육관.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난 시간이지만 체육관 안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으로 가득 차 시끌벅적했다.
체육관 내부 연단 위쪽에 '2025학년도 5학년 한빛 영상 제작 발표회'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벽면에는 크고 작은 게시물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예술 형식의 통합이 감정이나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나만의 종합 예술 작품을 만든다면 어떤 형식들을 어떻게 조합할 수 있을까?', '표현 방식이 메시지 전달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라는 각각의 주제 아래 학생들이 각자의 생각을 적어 놓았다.
옆으로 영상 제작 과정 등을 설명하는 다양한 게시물들이 연이어 붙어 있고, 영상 제작에 사용했던 소품도 선보였다.
사회를 보는 선생님이 발표회 시작을 알리자 장내는 이내 조용해졌다.
5학년 담임 선생님과 영상 제작을 지도한 감독 선생님 소개에 이어 교장 선생님의 인사말을 하고 나서 곧바로 영상 발표가 시작됐다.
4학급 88명의 학생은 12개의 모둠으로 나뉘어 모둠별로 5∼7분 정도의 영상을 선보였다.
학생들이 촬영감독, 편집감독, 스크립터, 보조감독, 매니저, 예술감독, 배우가 되어 촬영한 영상들이다.
제목은 불행의 시험지, 왜 그립지?…', '아침 등교 전쟁, 잘못 뽑은 반장과 비밀조직, 급식행, 난 홀로 집에,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지팡이, 학교보다 연애, 응답하다 2021, 가난의 현실, 역사를 바꾼 아이, OUR DREAMS 등으로 다양했다.
영상 제작발표회는 영화 같은 종합예술에서의 표현 방식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이고 그 결과물을 다른 학년 학생이나 학부모들과 공유하는 장이라고 했다.

이는 표선초의 특색 교육활동인 '탐구나눔의 날(Sunshine Day)'의 한 형태다. 교육과정을 통해 탐구한 결과를 학생, 학부모, 지역 사회와 나누는 프로그램인 탐구나눔의 날은 수업 나들이, 지역 사회 활동 참여, 캠페인, 전시회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국제바칼로레아(IB) 학교인 표선초 5학년은 매년 이맘때 영상 제작발표회를 한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는 학생이 다양한 과목을 통합적으로 탐구하면서 사고력을 높이고 자기 주도적 학습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한 교육 체제다.
다시 말하면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탐구와 토론, 논술·서술형 평가를 통한 문제 해결 중심의 교육 방식이다.
표선초는 제주도교육청이 공교육에 IB를 처음 도입한 2020년 IB 관심학교로 지정됐고, 다음 해 후보학교가 됐으며, 2022년 스위스에 있는 국제 교육재단인 IBO로부터 '월드스쿨'(World School)로 인증받았다.
표선초는 국어, 수학, 영어, 음악, 미술 등 교과 간 경계를 넘는 통합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교사들은 IB 초등 교육과정(PYP)에서 제시한 6가지 초학문적 주제를 바탕으로 국가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반영해 다양한 교과 내용을 융합하고, 주제 중심의 수업 자료를 구성해 가르친다.
초학문적 주제는 ▲ 우리는 누구인가 ▲ 우리가 속한 공간과 시간 ▲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 ▲ 우리 자신을 조직하는 방식 ▲ 우리 모두의 지구이다.
학년별로 각 주제의 중심 아이디어, 명시된 개념, 탐구 주제 목록, 학습 접근 방법, 학습자상 등을 다르게 해 실생활과 연계한 배움의 장을 실현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송성환 교장은 "IB 도입 초기에 일반적인 교과목을 왜 배우지 않느냐고 불안해하며 민원도 많았는데 어느새 인식이 바뀌어서 학부모들이 모두 IB 교육을 신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초학력미달 학생에 대해서는 담임교사의 개별적인 지도와 더불어 외부 강사와의 협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각자의 수준에 맞는 출발점을 마련해주고 같이 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5년째 표선초에 재직 중인 한승훈 IB연구부장은 "어쩌면 IB 학교가 국가 교육과정을 소홀히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교사들이 국가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자체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어 교육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표선초는 IB 월드스쿨로 이름을 날리면서 재학생이 크게 늘었다. 2021년 230여명에서 올해 461명으로 2배나 증가했다. 재학생의 절반 이상이 육지 등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다.
IB 학교 중 유독 표선초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인근 표선중과 표선고 역시 IB 학교여서 고교과정까지 연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표선초를 비롯한 토산초, 장전초, 제주북초, 가마초, 보목초, 성산초, 시흥초, 온평초, 풍천초, 한마음초와 표선중, 제주사대부중, 제주중앙여중, 애월중, 성산중, 표선고 등 17교가 IB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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