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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지구·광피사표"…일왕 찬양 석각, 경부선 철도 터널에 방치

뉴시스

입력 2025.06.09 15:37

수정 2025.06.09 15:37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 "일제 잔재란 안내판을 세워야"
[울산=뉴시스] 대천성공(大天成功)·복리천추(福利千秋) 석각. (사진=김문길 소장 제공) 2025.06.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대천성공(大天成功)·복리천추(福利千秋) 석각. (사진=김문길 소장 제공) 2025.06.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조현철 기자 = 일제는 한일 합병 전인 1904년 경의선과 1905년 9월 18일 경부선 철도를 개설했다.

정부는 한국 최초 철도국 창설일(1894년 음력 6월 28일)을 기념해 철도의 날을 지정했다.

그러나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 강점기 건설한 철도 관련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않고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부선 개통 당시 서울~부산 간 철도 개설에 가장 힘들게 작업을 한 구간은 경북 청도~밀양 간 터널 개설 작업이다. 현 기술로는 산속 터널 개설 작업은 쉬운 편이나 당시는 수작업으로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됐다.

특히 조선 노동자 희생이 많았다.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부산외대 명예교수)은 9일 "철도 건설 당시 수많은 조선인이 죽어도 보상조차 못 받은 한민족의 슬픈 현장이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근대 국가를 촉발했다고 일제 통치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 존귀한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소장은 "문제는 아직도 전국에 일왕(日王·천황)을 찬양하는 석재 잔재물이 다수 남아 있고 일왕의 혼(魂)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해방 80주년 한일 협정 60년을 맞아 한 번쯤 되새겨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훼손된 한민족의 얼과 혼을 찾아 국내외를 누비고 있다.

김 소장에 따르면 오는 6월 28일 철도의 날을 앞두고 경부선과 중앙선 등 전국 철도의 일제 잔재를 손수 조사했다.

경부선 하양~남성현 간 철도노선을 탐방했다. 이곳은 감(枾)으로 와인을 만드는 경북 청도 명물 터널이 있다. 청도군은 하양~남성현 간 일부를 폐선하고 와인 터널을 만들었다. 바로 옆 경부선 선로(3㎞)는 옛 노선이 너무 경사져서 새로 뚫었다.

새로 만든 철도 터널에는 '천장지구'(天長地久), '광피사표(光被四表)'란 석각이 있다. 천장지구는 천황의 정치가 지구촌에 영원하다는 뜻이고 광피사표는 태양의 빛이 고루고루 비춘다는 의미이다.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어 현장 조사는 못했다.

구 철도 터널 입구에 '대천성공'(大天成功)이란 석각이 있다. 대천성공은 하늘이 내린 천황의 국가가 번성한다는 의미이다. 일본은 하늘이 내린 나라이고 일왕은 천대 만대 가야 할 '팔굉일우'(八紘 一宇)에 대천성공을 노래했다. 팔굉은 오대양 팔대주 우주지구란 뜻이다. 이 지구를 대천성공 나라로 만들어 나가자는 의도다.

'복리천추'(福利 千秋)란 석각도 있다. 복리천추는 지구촌에 사람이 잘살 수 있는 복리 국가로 나아간 영원한 나라라는 뜻이다.

철도 개설 때 조선인의 고통을 극복하면 멀잖아 잘살 수 있을 때가 온다는 일본인의 구호(口呼)다.

[울산=뉴시스] 고지마의 업적을 기리는 비문과 식산흥업(殖産興業) 석각. (사진=김문길 소장 제공) 2025.06.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고지마의 업적을 기리는 비문과 식산흥업(殖産興業) 석각. (사진=김문길 소장 제공) 2025.06.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미전리에 가면 구 경부선 터널을 '트윈 터널'이라 부르고 어린이 놀이터로도 유명하다. 이 터널 위엔 '식산흥업'(殖産興業)이라 문구가 있다. 식산흥업은 일제 강점기 산업 문화를 번성(富)케 하자는 일본 정부 구호다.

경남 일대 철로 개설을 담당한 회사도 식산흥업이다. 당시 비문을 보면 회사 사장은 고지마 아미노 쓰게(兒嶋彌之助) 이다. 고지마란 사람은 재벌가이다. 메이지유신의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그의 후손은 오카야마현에 큰 촌락을 이루고 산다.

고지마의 업적을 기리는 비문이 있다.
명치 35년(1902년) 경부선 철로 개설 공이 크다고 세웠다. 대구~부산 간은 마에다(前田組)건설이 맡았다.


김문길 명예교수는 "비문을 본 후 밀양시 관광과에 전화했으나 직원은 모르고 있어 안타깝다"며 "일왕을 찬양하는 석각을 없애버리든지 둘 것이라면 석각이 있는 곳에 일제 잔재란 안내판을 세워 후 세대에 산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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