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티빙-웨이브 합병 조건부 승인
업계 "시장 급변 속 1년 반 합병 지연 아쉬워…주주 동의 관건"
새 정부 출범 직후 메가 K-OTT 신호탄…실제 합병 시점은 미지수공정위, 티빙-웨이브 합병 조건부 승인
업계 "시장 급변 속 1년 반 합병 지연 아쉬워…주주 동의 관건"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10일 티빙-웨이브 간 기업결합 신고를 조건부 승인하면서 새 정부의 K-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정책 드라이브가 본격화했다.
양사 합병 시 월간 활성 사용자(MAU·지난 5월 기준)는 1천127만명에 이르러 넷플릭스(1천450만명)에 육박, 단일화된 토종 OTT로 K-콘텐츠 유통의 주도권을 되찾고 규모의 경제와 협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그러나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 속에서 이미 관련 절차가 1년 반가량 지연된 데다, 주주 동의 등 절차가 남아 있어 실질적인 합병과 그에 따른 효과를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 사전 단계 통합 조치로 유통 주도권 확보 기대
공정위가 이날 티빙과 웨이브 간 임원 겸임을 승인한 것은 양사 간 이사 파견이 가능해졌다는 뜻으로, 경영권 구조에 변화를 주는 사전 단계의 통합 조치로 해석된다.
앞서 CJ ENM[035760]과 티빙은 웨이브의 이사 8인 중 대표이사를 포함한 5인, 감사 1인을 자신의 임직원으로 겸임하도록 하는 합의서를 지난해 11월 웨이브와 체결한 뒤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콘텐츠 투자 확대, 서비스 혁신,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 본격적인 합병 시너지가 가시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직후 K-콘텐츠 육성과 토종 OTT 플랫폼 강화를 위한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실질적 합병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OTT 같은 플랫폼도 나라가 나서고 지원해서 우리 것을 만들어야 한다"며 국내 OTT 플랫폼 육성을 통한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강조하기도 했다.
현재 K-콘텐츠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나 유통 주도권과 수익은 넷플릭스 등 외국계 플랫폼이 독점하는 구조인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국내 제작사들은 재투자 여력과 주도권 상실이라는 위기에 빠져 있었고, 티빙과 웨이브의 결합이 전략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주목받아왔다.
개별 플랫폼으로는 글로벌 공룡들과의 경쟁이 어려운 상황에서 통합 플랫폼이 콘텐츠 투자 확대, 플랫폼 운영 및 제작·유통의 효율화, 서비스 혁신과 이용자 혜택 증진, 해외 진출 기반 마련 등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의 핵심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플랫폼법정책학회와 한국벤처창업학회 주최로 지난 달 19일 열린 '콘텐츠 플랫폼 산업정책' 세미나에서 전성민 가천대 교수는 "글로벌 플랫폼의 시장 지배적 행위가 국내 플랫폼 생태계를 직접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내 콘텐츠 플랫폼이 글로벌 플랫폼의 하청기지로 전락하지 않도록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디어 산업 평론가인 퓨처랩 조영신 박사도 지난 4월 29일 열린 한국방송학회 관련 세미나에서 "강력한 로컬 OTT를 키우는 것이 먼저"라며 "넷플릭스가 선택하지 않는 국내 콘텐츠를 흡수할 로컬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실제 합병에 주주 전원 합의해야…"빠른 진행과 사후 정비 필요"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가 큰 관문이기는 했지만 실제 합병까지는 넘어야 할 고비들이 여전하다. 공정위 승인이 곧 합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합병이 성사되려면 양사 주주 전원 합의가 필요하다.
티빙과 웨이브는 이미 2023년 12월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티빙의 2대 주주인 KT스튜디오지니가 명확히 찬성하지 않으면서 절차가 1년 반 동안 지연됐다. IPTV 사업에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KT[030200]는 합병에 부정적 입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유료방송 전반에 대한 영향뿐만 아니라 KT그룹과 티빙의 전략적 파트너십에 미치는 영향과 주주가치 제고에 유리한지 여부를 고려해 검토 중"이라는 것이 최근 밝힌 입장이다.
하지만 새 정부 기조를 고려하면 합병의 열쇠를 쥔 KT가 계속 같은 입장을 고수할지는 미지수라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 과정에서 여전히 남은 가장 큰 숙제는 KT의 동의를 받아 본계약을 맺고 공정위에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하는 것"이라며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점점 강화되는 등 국내 OTT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시점에서 아직 변수가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러한 지점을 고려한 듯 티빙과 웨이브는 공정위 발표 후에도 명확한 합병 시점을 밝히지는 못했다.
그러면서 "성장 한계에 처한 K-콘텐츠 생태계 발전과 성장을 위해 대부분의 주주는 합병에 동의하고 있다"며 "각 사 경영 노하우와 플랫폼 역량을 결집, 이용자들에게 더 다양한 콘텐츠와 향상된 시청 경험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K-콘텐츠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겠다"고 설명했다.
업계와 학계에서도 양사 합병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로, 일단 빠르게 추진하되 사후 정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용희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기업결합 효과에 준하도록 한 공정위 판단은 합리적"이라며 "미디어 시장이 급변하고 있고 냉혹한 거래 관계에 있다. 이 결합의 목표는 운영 효율성 확보 측면이 크기 때문에 관련 절차가 고민 없이 빨리 진행돼야 하며 문제가 생기면 사후에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정위는 결합 상품 출시로 인한 구독료 인상 효과를 억제하기 위해 2026년 말까지 현행 요금 수준을 유지하라는 시정조치도 부과했다.
이와 관련해 노창희 디지털정책산업연구소장은 "미디어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합병 법인은 반드시 잘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경쟁자들은 계속 요금 인상을 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1년 반 동안 요금이 묶이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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