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주 52시간제도 개편'을 요구했던 벤처 업계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 공약에 '주 4.5일제'가 담기면서 벤처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새 정부가 이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적극 나서는 만큼 4.5일제 이행도 본격 논의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업계는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연구·개발(R&D)은 몰입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이 필요한데, 주 4.5일제가 시행될 경우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져 기업의 역량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11일 이 대통령 공약에 따르면 새 정부는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시범 사업 실시를 지원하고 실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할 계획이다.
범정부 차원에서 OECD 평균(지난해 기준 1742시간, 한국은 1872시간) 이하 노동시간을 실현하기 위해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주 4.5일제 구상대로면 현재 주 40시간 근무(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시 52시간)는 주 36시간 근무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반면 벤처·스타트업은 획일적인 주 52시간제도의 개편을 요구해 왔다. 투입한 시간과 노동력만큼 생산량을 예측할 수 있는 제조업과 다르게 벤처·스타트업은 결과물이 언제 도출될지 모르는 지식 산업 기반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조업의 경우 회사 입장에서 업무 시간이 부족하면 추가 노동자 고용으로 생산성을 일부 유지할 수 있으나, 벤처·스타트업은 기술 개발에 적합한 인력을 단기간에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애로 사항으로 꼽혔다.
"연장근로 단위 늘리고 R&D 인력은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해야"
이에 벤처기업 업계는 기업과 근로자가 합의할 경우 현행 '주' 단위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 개편을 요구해 왔다.
이와 함께 R&D 인력 등 벤처기업의 핵심 근로자는 당사자 간 계약을 통해 주 52시간제 적용을 예외로 할 것을 주장했다.
이 같은 목소리는 지난달 벤처기업협회가 570개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응답기업들의 63%는 '근로시간 유연화 및 제도 개편'에 대해 '중요하다'고 답했다.
전체 고용 인원 중 R&D 인력이 약 25%를 차지하는 국내 벤처기업 대표 A 씨는 "현재 주 5일만 근무하더라도 업무 스케줄이 상당히 빡빡한 편"이라며 "반나절을 더 쉰다면 분명히 기업의 애로사항은 더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발 업무 비중이 높은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하거나 외주를 맡기려고 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보면 (기업들의 이탈로)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벤처 업계 관계자 B 씨는 "주 4.5일 근무는 (노동 복지 차원에서) 반길 만한 일이지만 의무화는 난센스"라며 "기업의 성장 단계, 업종, 지역 등 각자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기업이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법무법인 광장은 '새 정부의 주요 입법 및 정책과제와 기업의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기업은 근로 시간 단축을 고려해 효율적인 인력 운영 방안 수립, 생산성과 효율성을 향상할 수 있는 근무 환경 조성, 적정 임금수준 유지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현행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을 예외 적용하는 조항은 '특별 연장 근로' 제도로 마련돼 있다. 이는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최대 주 64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는 제도로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다만 인가 조건에 △재해·재난 수습 △생명 및 안전 보호 △갑작스러운 시설·설비 고장 △업무량 대폭 증가로 사업에 중대한 지장 초래 △소재·부품·장비의 연구개발 등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용노동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이 담겨 있어 특수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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