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 그간 법 조항도 없는 '그림자 규제'로 가로막혀있던 가상자산발행(ICO)이 국내에서도 허용될 전망이다. 일반 가상자산(디지털자산)뿐 아니라, 스테이블코인도 일정 자격만 갖추면 발행할 수 있게 된다.
지난 10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대표 발의했다. 제도 공백이 오래 이어져 왔던 점을 고려해 하반기 내 조속히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국내에서는 가상자산 발행이 전면 금지돼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싱가포르 등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고, 우회적으로 사업을 벌여야 했다.
이에 따라 이번 법안 통과가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 스타트업들의 국내 '유턴'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가상자산거래소에 편중된 산업 지형도가 다양화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용어 '디지털자산'으로 통일…'가상자산' 사라진다
이날 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세 차례의 업계 전문가 검토를 거쳐 기본법 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우선 그간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등 코인을 통칭하던 법적 용어를 '가상자산'이 아닌 '디지털자산'으로 바꿨다.
그 배경에 대해 민 의원은 "가상자산이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이라며 "우리는 이 자산이 실체를 가지고 있는, 디지털에 있는 자산이라고 생각해서 디지털자산이라는 용어를 썼다"고 말했다.
현재 가상자산과 관련된 법안으로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규정을 담은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과, 가상자산사업자를 규제하는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있다. 민 의원에 따르면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통과될 시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과 특금법 내 가상자산 관련 조항도 기본법으로 포섭되고, 용어는 디지털자산으로 통일할 예정이다.
ICO 전격 허용…스테이블코인 자본금 요건도 50억→5억
기본법 통과 시 국내 가상자산 업계에 일어날 가장 큰 변화로는 ICO 허용이 있다. 우선 기본법에서는 가상자산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 즉 스테이블코인과 일반 디지털자산이다.
일반 디지털자산은 스테이블코인 외 디지털자산으로 밈코인, 유틸리티토큰, 거버넌스토큰 등을 의미한다. 현재 업비트, 빗썸 등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 중 테더(USDT), USDC 등 스테이블코인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코인이 여기 해당한다.
기본법에서는 스테이블코인(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의 경우에만 금융위의 인가를 받도록 발행인 자격을 제한했다. 발행인 형태에 대해선 제한하지 않아 주식회사든 비영리법인 등 다양한 형태의 발행인이 존재할 수 있다.
발행인 자격은 '대한민국내 설립된 법인으로서 5억 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5억 원 기준도 기존 초안의 50억 원보다 대폭 낮춤으로써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비은행 등 국내 법인이면 발행이 가능하다.
일반 디지털자산을 발행하려면 금융위에 발행 신고서만 제출하면 된다. 단, 금융위가 해당 신고서를 수리해야 한다. 해외에서 발행하거나 발행 주체가 없는 경우 제출 의무는 없다. 발행 주체가 없는 경우는 대부분 커뮤니티 주도로 탄생하는 '밈코인' 등이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가상자산, 이른바 '김치코인'에 대한 역차별이 있을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발행인 입장에선 금융위가 신고를 수리했다는 점에서 디지털자산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디지털자산 거래소에서 거래 지원하는 경우, 해외에서 발행된 디지털자산도 동일한 거래지원 심사를 거치므로 디지털자산 유통 시장에서의 차별점은 없다"고 덧붙였다.
'디지털자산 진흥 법안' 강조…대통령 직속 위원회도 설치
이 밖에도 기본법에는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설치되는 게 대표적이다. 위원회는 디지털자산 산업의 육성 및 진흥을 위해 설치되는 기구다. 민 의원도 위원회의 역할을 언급하며 이 법이 디지털자산 규제가 아닌, 산업 육성을 위한 법안임을 강조했다.
위원회는 이용자 보호 및 디지털자산 산업의 진흥을 위한 기본계획을 3년마다 수립하고, 매년 디지털자산 시장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민주당 디지털자산위 민간 위원들도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산업 진흥 법안'임을 재차 강조했다. 일반 디지털자산 발행인에 자격을 두지 않은 게 대표적인 진흥책이라는 설명이다.
민간위원으로 활동한 윤민섭 디지털소비자연구원 박사는 "디지털자산은 한국이 'G2'가 될 수 있는 산업"이라며 "디지털자산 발행인에 대해 기회의 장을 만들어주는 법안으로 이해해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자율규제 기구도 생긴다. 산업의 업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디지털자산산업협회'가 생길 예정이다. 거래소뿐 아니라 다양한 디지털자산업자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현 디지털자산 거래소협의체(닥사, DAXA)와 차별화되는 조직이다.
디지털자산업 유형 세분화…상장 규정도 마련
디지털자산업의 유형도 다양화됐다. 특금법상 가상자산사업자 유형은 가상자산 거래업자, 보관관리업자, 지갑 서비스업자 등 3개에 불과했지만 이번 기본법에서 10개로 늘었다.
10개 유형은 △디지털자산매매업 △디지털자산중개업 △디지털자산보관업△디지털자산지갑관리업 △디지털자산집합관리업 △디지털자산일임업 △디지털자산자문업 △디지털자산주문전송업 △디지털자산유사자문업 △기타 디지털자산관련업 등이다. 업종별 진입 규제 또한 기본법에 포함됐다.
법안에는 디지털자산 상장에 관한 내용도 담겼다. 우선 현재는 거래소들이 자체 기준에 따라 상장 심사를 하고 있지만, 법이 통과되면 거래소들은 대통령령에서 정한 거래지원 심사 기준에 따라 자체 심사를 실시해야 한다. 또는 디지털자산산업협회 내에 설치된 '거래지원 적격성 평가위원회'에 평가를 위탁하는 방법도 있다.
이와 관련해 민 의원은 "닥사는 거래소들이다. 거래소는 이해충돌 문제가 늘 있다. 그래서 닥사에만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 지원, 유지, 종료와 관련된 것(심사)은 거래소에서도 할 수 있고, 협회 산하에 있는 거래 적격성 평가위원회에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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