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최재헌 기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블록체인·가상자산 관련 규제만 명확해지면 좋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의 새 수장으로 취임한 직후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 업계 관계자가 내놓은 대답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라는 표현 속엔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하기보다, 그저 정상적인 사업 환경만이라도 보장해 달라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이러한 반응은 선거철마다 나온 정치인들의 '도돌이표 공약'에 대한 피로감에서 비롯됐다. 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토큰증권(ST) 법제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등을 가상자산 공약으로 내세웠다.
특히 토큰증권 법제화는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 당시에도 공약으로 등장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같은 해 토큰증권 시장을 열기 위한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으나,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채 지난해 제21대 국회의 임기 종료로 폐기됐다.
이후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은 또다시 토큰증권 법제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제22대 국회가 꾸려진 뒤에는 여야가 함께 관련 법안을 발의해 분위기를 띄웠지만,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법안 처리는 다시 뒷전으로 밀렸다.
그 사이 토큰증권 시장에 뛰어든 기업들의 고심은 깊어졌다. 증권사와 블록체인 기업이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 토큰증권 발행·유통 플랫폼을 구축해 놓았지만, 법이 없다는 이유로 사업은 불가능했다. 포기하자니 아깝고, 밀고 나가자니 언제 시장이 열릴지 모르는 '계륵'으로 전락한 셈이다.
지난해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한 '블록체인 진흥주간' 행사에서 만난 한 토큰증권 플랫폼 관계자는 "시장이 열리면 바로 출시할 시스템은 이미 다 갖춰져 있지만 제도화가 되지 않아 그저 답답할 따름"이라며 씁쓸한 감정을 내비쳤다.
반면 해외는 다르다. 이미 토큰증권은 세계 각국의 부채 해결 방안으로 떠오를 만큼 시장이 커졌다. 국채를 토큰화해 투자 접근성을 높여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큰화된 미국 국채의 시가총액이 불과 반년 만에 75% 이상 급증한 이유다.
하지만 한국은 몇 년째 '법안 통과'라는 첫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수많은 기업이 사업을 포기하거나 철수했고, 한국만 토큰증권 시장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대선 때부터 '가상자산 대통령'을 자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초 취임 이후 곧바로 가상자산 시장 육성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공약 실천 의지를 분명히 했다. '말'로만 혁신을 외치는 한국 정치권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이젠 한국도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업계는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지금 필요한 건 '실행력'과 '정치적 책임감'이다. 세계 시장에서 신산업을 이끌 새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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