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재영 칼럼] 서울대 사용법

뉴스1

입력 2025.06.11 07:31

수정 2025.06.11 07:31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서울=뉴스1)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대학이 사회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대학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통적 지식 전수 방식이 사회 패러다임의 거대한 변화에 밀려 도태되기 시작하자, 실질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가르쳐주지 못하는 ‘대학이라는 공룡 조직’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는 것이다. 근래 AI(인공지능)의 혁명적 발전은 이런 인식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서울대가 처한 상황도 여타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국 사회가 서울대에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지 못한다는 실망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서울대 출신 인물들이 많이 연루되면서 서울대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본연의 역할은 충실히 하지 못하면서 해바라기처럼 권력을 좇는다는 비판까지 들린다. 국민은 서울대가 사적 이익 추구에 유능한 ‘똑똑한 집단’에 그치지 않고 사회를 더 정의롭게 만드는 데도 공헌하기를 기대하니, 여타 대학과 비교할 수 없는 지원을 받는 서울대 구성원들의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울대가 이런 점을 성찰해야 한다는 사실과 별개로, 서울대 출신이거나 현재 구성원인 일부 사람의 말이나 행동으로 서울대 전체를 도매금으로 비난하는 건 우리 사회를 위해 이로운 일은 아니다. 서울대를 이끌어온 주역은 높은 지위에 올랐거나 명성을 얻은 일부 사람이 아니라 묵묵히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해온 조용한 다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서울대가 1946년 개교 이래 ‘교육입국, 과학입국, 기술입국’을 실현하는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이 조용한 구성원들 덕분이고, 지금도 이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변함없이 강의실과 연구실 등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서울대’는 단지 하나의 대학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공공재다. 서울대는 대한민국의 가장 경쟁력 있는 자원인 인재를 길러내는 ‘사회간접자본’ 역할을 해왔고, 우리 사회 전체가 서울대라는 공공재의 형성과 발전에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탰다. 따라서 이렇게 귀중한 공공재를 함부로 다루지 않고 어떻게 잘 쓸지도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서울대가 국민이 기대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게 만드는 ‘서울대 사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서울대 사용법을 만든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까?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서울대를 다른 대학이 시도하기 힘든 과감한 구조 변화의 플랫폼으로 쓰는 것이다. 서울대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위상을 생각하면, 사회에 던질 선도적 메시지를 담아내기에 이보다 좋은 그릇은 없다. 예컨대 학생 선발에서 지역 균형 선발 제도를 대폭 확대하는 등, 혁신의 발목을 잡는 낡은 입시 제도를 과감하게 바꾸는 모델을 제시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그렇게 선발한 학생들을 창의적으로 교육할 기존과 다른 실험적 방식을 도입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혁신을 요구하려면 외압에 따라 교육과 연구의 방향이 휘둘리지 않도록 확실하게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단기적 응용 연구보다 여타 대학이 하기 힘든 장기적 기초연구에 집중하게 하는 것도 서울대 사용법에 포함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성과를 다른 대학이나 기업이 공유하게 하여 실용적 연구로 발전시킨다면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역할 분담 및 협력 모델이 만들어질 것이다.
서울대가 여타 국공립대학들과 공동운명체라고 인식하면서 자신의 공적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추구하게 만드는 게 필요하고, 그런 전제하에 과감한 지원으로 적극적인 실천을 유도해야 한다.

서울대가 우리 사회의 공공재로서 기대에 부응하여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서울대 구성원 자신의 노력 못지않게 우리 사회 전체의 관심에 달려 있다.
공공재인 서울대를 잘 사용하는 건 대한민국의 미래를 잘 그리는 것이다. 바람직한 ‘서울대 사용법’을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여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