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박종홍 기자 = 국내 정유업계와 석유화학업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글로벌 정유업계는 정제 설비 축소에 나선 반면 석유화학업계는 여전히 증설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정유업계는 공급 과잉 문제가 해소되면서 실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석유화학업계는 중국발(發) 저가 공세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는 모양새다.
'석유 수요 감소'에 문 닫은 글로벌 정유…석화는 '생산시설 확충 지속'
11일 하나증권에 따르면 유럽의 경우 페트로이네오스, 셸(Shell), BP 등 정유사들의 시설 폐쇄로 생산능력이 40만 배럴(1일 기준) 축소됐다.
각국 정유업체들은 경기 불황에 따른 석유 수요 감소와 전 세계 탄소중립 기조 강화, 각종 모빌리티 전동화가 겹치면서 정제 설비 폐쇄를 검토·추진해 왔다. 영국 석유기업 셸은 올해까지 독일에 위치한 정유공장을 윤활유 원료 생산 시설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필립스66도 로스앤젤레스(LA) 지역 정유공장 운영을 중단할 예정이다.
중국 역시 정제설비 축소가 예상된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차이나는 이달 말까지 다롄에 위치한 중국 북부 최대 정유공장을 완전히 폐쇄한다. 해당 설비 전체 용량은 1일당 41만 배럴로 중국 전체 설비의 3%에 달한다.
여기에 '티포트(Teapot)'로 불리는 민간 소형 정유사들이 그간 수익성 악화에 타격을 입고 문을 닫아왔던 점까지 감안하면 중국의 설비 감소 폭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석유화학업계는 세계적으로 생산시설 확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글로벌 신용평가사 S&P 글로벌은 2025~2030년 석유화학설비 신규 증설 전망치를 기존 전망치 대비 상향했다. 품목별로는 에틸렌이 3.1%, 폴리에틸렌(PE)은 5.5%, 폴리프로필렌(PP)은 9.3% 높아졌다.
특히 이런 움직임은 중국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같은 기간 중국의 신규 증설 전망치는 기존 전망치와 비교하면 에틸렌 4.9%, 폴리에틸렌 13.2%, 폴리프로필렌 44.1% 증가했다. 세 품목 모두 글로벌 증감률 대비 높은 수치다.
정제설비 감소와 석유화학 설비 증가는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 강화와 연관이 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양 업계 모두 대표적 굴뚝산업으로 탄소 배출 산업으로 꼽히지만 세부적으로 처한 입장은 다소 다르기 때문이다.
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하면서 탄소 직·간접 배출(스코프 1·2)뿐 아니라 공급망 전반에서의 배출(스코프 3)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완성품에 탄소가 가둬지는 석유화학업계와 달리 소비자가 완성품을 태우는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하는 정유업계는 해당 기준을 충족하기가 더욱 어렵다.
"하반기 정유 수급 개선 전망"…"범용성 석화 스프레드 약세 지속"
정제시설은 축소, 석유화학 설비는 확대가 예상되면서 국내 정유·석화 업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 정유업계의 수익성 지표인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최근 배럴당 6~7달러대까지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유업계는 통상 4~5달러의 정제마진을 손익분기점으로 삼는다.
반면 석유화학업계 수익성 지표로 활용되는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에서 나프타 가격을 제외한 금액)는 계속해서 손익분기점인 250달러 선을 밑돌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에틸렌 스프레드는 168달러다. 자력으로 실적 회복을 이루기 어려운 상황인 석유화학업계는 새 정부의 구조조정 및 지원 방침이 담긴 특별법 제정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유업계 업황에 대해 "2025년 하반기 글로벌 정유 수급은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노후 설비 폐쇄와 중국 티포트 정유사 경쟁력 약화로 개선될 전망"이라며 "중국의 경기 부양책과 인도 수요 증가 등도 마진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석유화학업계에 대해 최영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수요는 이구환신을 바탕으로 강세를 보이지만 스프레드 개선은 부재하다"며 "공급과잉이 심화하는 범용성 석유화학제품 스프레드 약세는 장기화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