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처럼 귀한 표준 전문가 확보의 중요성은 글로벌 기술 패권경쟁이 격화되면서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와 제품들은 모두 국제표준이라는 틀 위에서 구현된다. 이 틀을 설계하고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이들이 앞서 말한 국제표준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단순한 기술 전달자를 넘어 미래 기술의 지형도를 그리는 설계자이자 국제무대에서 국익을 대변하는 전략가다. 그렇기에 글로벌 ICT 표준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동력은 결국 '사람', 즉 국제표준화 전문인력과 그 역량을 키우는 데 있음은 자명하다.
주요국들은 이미 국제표준을 선점하는 것이 곧 미래 ICT 기술의 주도권을 잡는 길임을 간파하고 국제표준 전문가 확보와 육성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은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주도로 지난해 '표준화우수센터(SCoE)'를 설립하여 5년간 총 1500만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하며 실질적인 표준 전문가 양성에 나섰다. 유럽연합(EU) 또한 개별 전문가들의 국제 ICT 표준화 회의 참여를 지원하는 'StandICT.eu' 프로젝트나 유망 연구자들이 표준화 과정에 기여하도록 돕는 'HSbooster.eu' 같은 맞춤형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 표준 전문가 육성에 힘쓰고 있다. 중국은 국제표준 제정을 이끈 전문가에게는 '표준혁신공헌상'을, 소속기관에는 최대 1000만위안(약 19억원)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표준 전문가가 주도하는 표준화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9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도로 20년 이상 경력의 '명장급 ICT 국제표준화 전문가'를 3년마다 선정, 이들이 차세대 표준 인력 양성을 위한 멘토링과 표준개발 자문 등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지원하며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양자 등 미래 디지털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지난 5월 새롭게 위촉된 25명의 명장급 전문가들이 이러한 노력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이처럼 각국은 미래 ICT 패권을 위해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와 함께 국제표준이라는 '게임의 룰'을 주도할 '사람'에 대한 투자를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ICT 표준 선도국으로 도약하려면 현재 노력을 발판 삼아 더욱더 체계적이고 과감한 인재양성 전략을 펼쳐야 한다. 이번에 위촉된 '명장급 ICT 국제표준화 전문가'들이 경험과 지혜로 인재를 발굴하고 후배들을 이끌어 표준 전문가 선순환 구조의 핵심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또한 명장들의 활동 지원을 넓히고 차세대 인력 양성에 더욱 힘쓰는 등 전문가 저변 확대를 위한 국가적 투자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의 헌신이 씨앗이 되어 더 많은 젊은 인재가 표준 전문가의 길을 걷고 대한민국이 ICT 표준 강국으로 우뚝 서는 미래를 그려본다. 결국 기술혁신과 국가 경쟁력의 최종 방점은 '사람'이다.
손승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회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