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방치된 화양초 부지, 행복기숙사 건립 두고 찬반 갈등
"청년 주거 대책" vs "지역 생계 위협"
전문가 "청년과 지역사회 상생 해법 모색 필요"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김지윤 인턴기자 = 12일 오전 찾은 서울 광진구 화양초등학교. 학생들로 북적였어야 할 학교가 고요했다. 운동장 한편에는 차량 수대만 주차돼 있었고 2층 교실 불이 켜진 채 시계는 오후 3시50분에 멈춰 있었다. 2023년 폐교된 이후 2년째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이 부지는 현재 일부 주민들의 임시 주차장으로 쓰인다.
정부는 화양초에 대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 '행복기숙사'를 짓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행복기숙사는 대학생, 청년 근로자 등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한국사학진흥재단이 민간·공공 부지를 활용해 공급하는 공공기숙사다.
당초 이 부지는 '화양미래교육문화원'으로 개발될 예정이었지만 2023년 말 예산 확보가 어려워지며 계획이 중단됐다. 이후 국정과제인 '청년 주거 안정'에 따라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관계 기관 실무협의체가 구성되면서 기숙사 등 대안 활용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근 원룸 임대업자 등 일부 주민 반발로 사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학생들과 주민 사이에는 "기숙사라도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과 "생계가 흔들린다"는 우려가 맞서고 있다.
이처럼 화양초 부지 활용이 답보 상태에 머물자 최근 인근 청년들은 행복기숙사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11일 오후 건국대에서 광진포럼 주최로 열린 '화양초 부지 행복기숙사 건립 갈등 해결과 상생 방안 모색' 포럼에선 민달팽이유니온, 대학생 대표, 사학진흥재단 관계자 등이 참석해 부지 활용 방안을 논의했다.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와 민달팽이유니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광진구의 청년 1인 가구 비율은 41%, 화양동은 76.4%로 서울에서도 청년 주거 수요가 특히 높은 지역이다.
김가원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와 통계청 청년층 소득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 2023년 보증금 5000만원, 전용면적 10평 이하 월세 계약을 분석했을 때 광진구의 월세액은 평균 62만6000만원으로 청년 기준 RIR(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 지수가 34%에 달했다. 통상 RIR이 30%를 넘어서면 임대료 부담이 과도하게 많다고 판단한다.
화양동 일대는 건국대·세종대·한양대 등 캠퍼스가 밀집해 있으나 대학 기숙사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학생들의 주장이다. 교육부의 '2024년 대학 기숙사 수용률 자료'에 따르면 건국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18.7%, 세종대는 11.1%에 그쳤다.
건국대 부총학생회장은 "원룸 월세가 50만원이 넘고 기숙사 경쟁률도 높아 매번 떨어진다"며 "청년 주거 수요가 명확한데도 화양초는 2년 넘게 방치돼 있다. 이 공간을 그대로 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행복기숙사는 현재 광진구 청년 주거문제에 대한 최적의 해법"이라며 "기숙사 수용률이 턱없이 낮고 기존 원룸 월세는 감당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세종대 총학생회장도 "공공기숙사 확대는 단순한 주거복지를 넘어 지역 활성화에도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며 "주거권과 지역사회가 대립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반면 주민들은 "단순한 기숙사는 반대"라는 입장이다. 화양동에서 임대업을 하는 차모씨는 "동네 사람들 다 학생 상대로 월세 받고 사는데 공공기숙사 들어오면 수익이 줄어든다"라며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라 지식산업단지나 청년지원센터처럼 예산을 충분히 써서 지역과 학생이 함께 살아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화양동에 거주 중인 60대 여성 A씨는 "주민을 위한 복지시설이 생겨야 한다"며 "화양초는 원래 주민 자녀가 다녔던 학교인데 그 자리에 대학생들만 위한 시설이 들어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화양초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50대 남성 B씨는 "지금처럼 비어 있는 것보다는 사람 왕래가 있게 뭐라도 들어오는 게 낫다"며 "기숙사가 들어오면 인근 상권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사업을 추진 중인 한국사학진흥재단은 지난해 말부터 주민 간담회를 4차례 열고 지하 주차장·도서관·운동시설 등 주민 커뮤니티 시설을 포함하는 방식의 복합 개발 방안을 설명해왔다. 재단은 이 부지를 ‘(가칭)화양주거복합지원센터’로 개발하는 방향으로 구상 중이며 향후 평생교육시설·공연장·공용주차장 등 지역 필요시설 반영과 상권 연계를 통한 상생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기숙사와 주민시설이 함께 들어가는 ‘복합시설’로 추진되며, 지상은 기숙사·지하는 주민편의시설 등으로 구성된다.
서울 오류동, 연남동, 공릉동 등에서는 기숙사와 주민 시설을 함께 짓는 방식으로 갈등을 최소화했다. 도서관, 경로당, 어린이집 등과 함께 복합개발을 진행해 지역 반발을 낮췄다.
전문가들은 청년과 지역사회의 공존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경북행복재단 대표)는 "청년만을 위한 행복기숙사가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세대 통합형 주거 모델'로 재설계돼야 한다"며 "학생들 요구만 강조하기엔 주민의 삶도 존재한다. 폐교 부지를 활용할 때는 문화·복지 공간을 함께 조성하는 복합 방식이 장기적으로 지역에 더 유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행처럼 세대별로 나눠 지원하는 방식은 오히려 사회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며 "장기 로드맵을 갖고 주민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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