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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성의 인사이트] 다 아는 얘기 ‘구조개혁’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6.17 18:06

수정 2025.06.17 18:06

경제부 부국장 세종본부장
경제부 부국장 세종본부장
서민경제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지표는 차고 넘친다. 개인사업자의 신규 창업 대비 폐업률은 79.4%까지 치솟았다. 가게 10곳이 문을 여는 동안 8곳은 닫았다. 최근 10년래 가장 높다. 자영업자 등 개인사업자 336만명의 금융기관 대출금액은 지난해 말 기준 1123조원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자영업자 대출 중 미상환된 50조원가량도 포함해서다. 금융권 내부적으로 '코로나 대출'은 회수가 힘든 '악성 채권'으로 분류한다. 나머지 대출도 겨우 이자만 내면서 만기 연장 중인 경우가 상당하다. 산업지표도 마찬가지다. 내수·고용 영향이 큰 건설부문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 4월까지 건설기성은 12개월 연속 감소세다. 건설업 신규 취업자도 올 5월 기준 13개월째 줄고 있다. 역대 최장 기간 감소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는 이 같은 경제 현장과 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민생회복과 경제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 현 상황을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한 위기"라고 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진단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수출은 우리 경제를 지탱해 온 버팀목이었다. 미국발 관세전쟁이 격화되면서 상황은 나쁜 쪽으로 바뀌었다. 수출둔화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5월 수출은 4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6월엔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라는 중동 불안이 추가됐다. 대외 악재가 겹겹이 쌓이고 있다. 내수 부양을 통해서라도 경제를 지탱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올해 0%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성장률의 마이너스 추락을 막을 수 있다. '건전재정'이란 나발만 불 수는 없는 상황에 몰렸다. 국가재정을 마중물 삼아 불황과의 일전을 치르겠다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방향 제시는 큰 틀에서는 시의적절해 보인다.

'발등의 불은 꺼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우려는 남는다. 민생의 위기, 아니 그것을 포함하는 우리 경제의 근본적 위기에 대한 처방전은 미흡해서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은 내수위기 타개책 마련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도 '경제 구조개혁'도 최대 현안으로 꼽는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드는 방안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투자와 기후위기 대응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잠재성장률 하락을 완화하고 생산성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개혁방안 등은 없었다. 새 정부는 초기에 국정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체감도 높은 부분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 전략적 선택임을 인정하지만 불안감은 있다.

경제정책이 단기대응에 매몰되면 부작용은 후대가 감당해야 한다. 성장률 둔화가 잠재성장률 하락에 따른 결과인데, 이를 단기적 경기부진으로 판단해 경기부양을 반복하면 경제도 못 살리고 재정은 훼손돼 경제가 불안정을 거듭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의 언급에 주목한다. 이 총재는 최근 현 경기상황을 "경기부양정책이 시급해졌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일 구조개혁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2030년경 잠재성장률은 1%대 초·중반까지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잠재성장률 끌어올리기는 고통을 수반한다. 노동과 자본의 투입을 늘려야 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개혁과 혁신이 필요충분조건이다. 특히 구조개혁은 일부 세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표를 우선하면 선택하기 쉽지 않다. 연금·노동 개혁 모두 마찬가지다. 국민연금 모수개혁만을 하는 데 소요된 세월이 얼마인가. 정년연장은 시급하지만 노동개혁이 한 걸음도 못 나가면서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실용'은 이념적 갈라치기가 아니어서 피부에 와닿는 정책으로 다가온다. 다만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효과를 장담하긴 어렵다.
최근 구조개혁 필요성을 묻자 "다 아는 거니까. 차근차근 이야기하자"고 하는 경제관료의 답변을 들은 적 있다. 정치논리로서는 맞을 수 있다.
그러다가 경제정책 타이밍을 놓치고 한 해, 두 해, 5년을 흘려보낸 게 한두 번인가. 새 정부 국정기획위원회가 내놓을 개혁의 설계도에 해법이 담기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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