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예프는 쇼스타코비치, 차이코프스키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러시아가 가장 불안정했던 20세기를 관통했던 작곡가이다.
프로코피예프는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태어났고 사회주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1920년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을 프랑스어로 완성했다. 그가 영어에 능통하지 않았고 미국 관객들은 러시아어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나 그 덕분에 '미국에서 러시아 작곡가가 프랑스어로 만든 오페라'라는 국제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오페라 대부분은 여러 언어의 층위, 다양한 미학의 충돌, 상호 문화 간 차이와 그 접점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바로 이 복잡성 덕분에 오페라는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그렇기에 오페라를 만들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화합, 융합이 아닌 '배제'라는 단어는 언제나 불편하다. 특히나 몇몇 교육기관에서 러시아 음악을 교육과정에서 배제한 결정은 전 세계 무대를 누벼야 할 학생들에게 큰 피해가 아닐 수 없다. 학생들에게는 미래의 무대가 곧 세계라는 점에서, 더 넓은 시야와 언어적, 문화적 다양성이 절실하다. 정치적 논리가 예술과 교육의 범위를 결정짓는다면, 창작과 상상력은 그만큼 축소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공연하고 가르칠 수 있는 작품의 폭이 내일 우리 문화의 수용성과 성장을 결정짓는다. 이 시점에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은 하나의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국경을 넘고 경계를 허무는 이 작품처럼, 오늘날 한국 성악 교육 역시 국경을 넘고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배제와 금지는 예술에서 그 자리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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