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칼럼일반

[정상균 칼럼] 광기와 거품, 40년 전 일본을 보라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6.23 18:52

수정 2025.06.23 18:52

日, 80~90년대 초호황
'공짜 돈' 빌려 투자 광풍
거품 빠져 디플레 악순환
정상균 논설위원
정상균 논설위원
1980년대 일본은 초호황이었다. 1985년부터 4년여간 닛케이지수는 1만3000에서 3만9000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부동산 가격은 연평균 20% 이상 올랐다. '투기 거품'이 온 나라에 퍼졌고 끝없이 팽창했다. 1989년 도쿄 도심의 부동산 가격은 미국 전체 국토의 가치를 넘어설 정도였다.

1980년 일본의 국내 신용창출 총량은 국내총생산(GDP)의 300%에 이르렀다. 경제학자 찰스 P 킨들버거는 역작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에서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제조업체들은 도쿄와 오사카의 안면이 있는 은행가들에게 원하는 만큼 돈을 빌릴 수 있었다. 돈이 '공짜'인 것처럼 보였고, 일본인들은 흥겨운 소비잔치와 투자잔치를 계속했다"고 썼다.

1985년 미국과 플라자 합의로 달러당 240엔 하던 환율이 150엔으로 폭락했다. 1989년 통화당국이 정책금리를 올렸다. 4만을 목전에 둔 닛케이지수는 1992년 1만4000으로 추락했다. 부동산 가격은 반 토막 났다. 은행들은 악성부채와 부실채권이 쌓여갔다. 기업들은 비용을 줄이려고 종신고용제를 포기하고 노동자를 해고했다.

2000년대 들어 정치인과 정부는 기업의 과잉 생산설비 감축, 신산업 육성과 같은 개혁에 실패했다. 통화 확대 등 전통적 경기부양 정책도 먹혀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투자와 소비를 줄였다. 이것이 실제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악순환을 심화시켰다. 제프리 잉햄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일본의 부채 디플레이션을 지목한 책 '돈의 본성'에서 "거품이 붕괴되면서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시작되었고 이는 결코 사라지는 법 없이 오늘날에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40년 전 일본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일 수 있다. 빠른 고령화(일본은 1996년, 한국은 2019년부터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불어나는 민간부채(GDP 대비 207%, 일본은 1994년 214%)는 거의 일치한다. 기적 같은 성장이 영원할 줄 알고 신산업 투자와 구조개혁을 미룬 것도 닮았다(한국은행 '일본 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 기술과 자본 축적 기간이 길고 공급과잉의 초호황에서 급전직하한 일본과 달리 우리는 인위적 통화절상 없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는 점이 차이다.

진보정권 출범을 기다렸다는 듯이 숨죽였던 유동성이 역습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6년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5대 은행 가계대출은 이달 들어 19일간 4조원이나 급증했다.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매수하려고 안달이 나면 그것이 '광기'다. 지금 우리는 적어도 이 직전 단계에 있을 것 같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것이 딱 이 지점이다. 정부는 20조원을 풀어 다음 달에 113만 소상공인의 빚을 탕감하고, 전 국민에게 25만~50만원(취약계층)의 현금을 나눠 준다.

열 차례 추경에 나랏빚을 400조원이나 늘린 문재인 정부의 전례를 비추어 현금 지원이 내수에 기여하는 정도(매출 증대와 신규 소비)가 30%(KDI, 2020년 14조원 지원금 분석)만 넘어도 성공적일 것이다. 그래도 내수 경기가 안 풀리면 내년 6월 지방선거, 2028년 5월 총선 전후에 지원금을 또다시 뿌릴 수도 있겠다. 나는 이번에 내 계좌에 들어올 민생지원금(결국 나와 누군가가 낸 세금)을 잘 쓰겠다. 다만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경험상 나중에 세금과 물가가 올라 '공짜는 없다'여서다.

이재명 정부에 바란다. 수십조원의 현금 지원은 이것을 끝으로 하고, 때를 놓치면 안 되는 기존 주력산업 재편과 노동·교육·연금과 같은 어려운 개혁의 결단, 정부의 성장형 재정 투입의 삼박자를 맞춰가라. 서울의 미친 집값이 광기와 패닉으로 치닫지 않도록 끈질기게 대책을 내야 한다.
이것에 실패해 거품이 꺼지고 양극화의 골이 더 깊어지면 '기본사회'니 '실용'이니 하는 정책도 무의미하다. 일본형 장기침체로 갈 것인지, 다시 일어서 성장할 것인지 앞으로 5년 안에 결판 날 것이다.
입법·행정권한을 모두 쥔 강력한 정권, 이 대통령의 통찰과 리더십을 기대한다.

skjung@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