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기고]AI 금융산업의 시대, ‘포용금융’의 새 지평을 열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6.24 13:42

수정 2025.06.24 13:41

피에프씨테크놀로지스(PFCT) 이수환 대표이사
피에프씨테크놀로지스(PFCT) 이수환 대표이사
역사적으로 포용금융은 권력의 관대함이 아닌 사회 구조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인 제도나 다름없었다. 자본시장이 형성되기 훨씬 이전인 농경사회에서도 포용금융의 개념은 존재했다. 고구려의 진대법이나 고려의 흑창, 조선의 환곡제도 모두 긴 춘궁기와 보릿고개를 구조적으로 해소하고자 한 국가 주도의 포용금융 정책이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중금리' 개념까지 등장하는데, 당시 시중 사채금리가 연리 50~100%에 이르던 시절 환곡제도의 이자는 6개월에 20%, 연리로 환산하면 40% 수준이었다. 이는 자본주의 금융 체계가 성립되기 전에도 ‘중금리 금융’이 서민의 생존을 지탱하는 실질적인 포용금융으로 기능했음을 방증한다.

물론, 농경사회에서의 포용금융은 국가가 서민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물자기반의 구휼체계로 운영되었으나 자본 산업이 고도화되고 사회 구조가 복잡다변화되면서 포용 방식 또한 점차 변모해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포용금융(Financial Inclusion)은 국제 금융정책의 아젠다로 급부상했는데, 우리나라 역시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와 같은 정책금융이 도입되며 금융 포용성을 제고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다만 이들 대부분은 정부 주도 하에 단일 금융기관이 일정 조건 내에서 제공하는 방식에 머물렀고 실질적인 시장 주도의 유의미한 포용금융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최근 들어 금융 산업은 다시 한번 급격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데이터 민주화와 AI 기반의 신용평가 기술의 발전은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되어 왔던 씬파일러(thin filer)나 중저신용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말, 온투금융사가 저축은행업권으로부터 연계투자금을 조달해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상품을 출시한 것은 오랜 기간 개념적으로 존재했던 '1.5금융' 또는 '중금리 대출' 시대의 실질적인 서막을 여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필자가 속한 회사는 이번 연계투자를 통해 신용점수 660점대의 중저신용자에게 3천만 원 규모의 첫 대출을 실행했고, 최종 금리는 12.1%로 제공되었다. 중저신용자 평균 대출금리가 18% 안팎에 형성된 현실을 고려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 기반의 리스크 분석과 제도권 자본이 조화를 이루며 실현된 중금리 구조라는 점에서, 포용금융이 실제 금융 시장에서 실행 가능함을 보여주는 유의미한 사례다.

이 협업은 업권 간 단순한 자금 연계나 구조적 결합에 그치지 않는다. AI 신용평가 기술을 통해 정교한 리스크 분산 구조를 설계하고 제도권 금융이 이를 신뢰 가능한 방식으로 수용함으로써, AI 리스크 평가 능력을 중심으로 한 건설적이고 건강한 중저신용자 포용 환경 형성의 문을 열었다. 이는 곧 금융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되고, 시장 전체의 효율성과 포용성이 동시에 제고되는 구조적 진화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AI 기술이 금융 전반에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이제 금융의 미래는 누가 더 정교하게 리스크를 분석하고, 더 많은 이들을 합리적으로 품을 수 있는가의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온투금융사와 저축은행간의 연계투자 실현은 '기술'이 '포용'을 실천하는 도구로, '자본'이 이를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그리고 '소비자'가 그 변화를 체감하는 주체가 되는 새로운 금융의 지평을 열고 있다.

한자 '포(抱)'는 몸을 구부려 태아를 품은 어머니의 형상을 본뜬 글자다. 세상의 빛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의 불편을 감내하는 그 형상은 오늘날의 포용금융이 취해야 할 자세와 닮아 있다.
기존 제도권에서 소외된 이들을 마주하고, 익숙하지 않은 리스크를 들여다보며, 이를 정교한 기술로 품어내는 일. 그 여정을 함께하는 파트너십 속에서 비로소 포용금융은 완성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온투금융업과 저축은행 두 업권이 함께 내디딘 이번 연계투자의 첫 걸음은 강자가 약자를 끌어안는 시혜적 접근이 아닌 기술과 자본이 스스로를 구부려 금융 약자를 능동적으로 품으려는 실천적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피에프씨테크놀로지스(PFCT) 이수환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