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장기 연체자 빚 탕감… "투잡 뛰며 갚았는데" 성실 상환자 분노

김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6.24 18:24

수정 2025.06.24 18:41

정부, 143만명 '특별 채무조정'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안 갚은 것인지 못 갚은 것인지
제도적으로 판별하기 어려운 문제
전문가 "자영업 폐업지원이 나아"
"코로나 때 진 빚 2억원을 4년 동안 '막노동'으로 겨우 다 갚고 나니, 남은 건 잔고가 텅 빈 통장과 망가진 건강뿐입니다. 결국 몸 갈아서 채무 변제한 사람들만 바보 됐네요."

이재명 정부의 '소상공인을 위한 장기 연체채권 정리 및 원금 감면 지원책'을 놓고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거세다.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만 손해'라는 불만부터 '도덕적 해이와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한다'는 우려까지 반발의 배경은 다양하다.

24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의 재기 지원을 위해 1조4000억원을 투입, 143만명을 대상으로 한 '특별 채무조정 패키지'를 추진할 계획이다.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 및 개인사업자 무담보채권을 일괄 매입하고 △자영업자·소상공인 채무조정을 위해 운영해온 '새출발기금'의 원금 90% 감면 대상에 저소득 소액 차주를 새롭게 포함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그러나 단순히 연체 기간만을 기준으로 빚 탕감을 결정할 경우 오히려 성실하게 빚을 상환해온 사람에 역차별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상대적 소외감과 악용 사례를 검증 없이 일괄 지원해줄 경우 정직한 상환자가 박탈감이 들 것이라는 하소연도 있다.

자영업자 A씨는 "투잡을 뛰며 빚 갚는 사람들도 있는데, 구분 없이 탕감해 준다니 허탈감이 든다. 7년 이상 연체할 정도면 갚을 의지가 없었던 사람들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의 장기 연체채권 정리 및 원금 감면 정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채무자의 경제 활동 복귀를 돕고, 금융권 리스크를 낮춰 금리 인상과 대출 제한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반응이다.

집 대출 포함 2억5000만원의 빚을 6년째 성실히 갚아오고 있다고 밝힌 자영업자 B씨는 "7년 이상 장기 연체된 채무자는 대부분 상환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로 인해 연체채권은 늘어나고, 금리가 인상돼 갈수록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항변했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공유해온 공정성과 책임의 원칙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이후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신뢰성 및 정당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채무 탕감이 반복되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채무를 상환해 왔던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며 "대출을 받아 상환하지 않고 버티면 정권이 바뀐 후 언제든지 탕감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도 "빚을 갚는 문제는 사회적 공정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성실하게 상환해온 사람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정책은 사회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노력한 사람이 보상을 받지 못하고, 갚지 않은 사람이 구제받는 구조는 젊은 세대와 자녀를 키우는 부모 세대 모두에게 깊은 박탈감과 위화감을 남겨 사회 통합에 큰 걸림돌이 된다"고 비판했다.

결국 일회적인 구제에 바탕을 둔 지원을 넘어 현실적인 수요분석과 지원 주체의 다양화, 자립환경 조성을 위한 로드맵이 이어지는 '단계적 지원체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조언이 우세하다.


임 교수는 "은퇴자나 청년 등이 처음 사업에 뛰어들 때, 이들을 위한 창업 개발 교육을 실시하고 소상공인을 위한 세미나나 워크숍·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체계적인 교육 인프라를 마련해야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짚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정말 힘들어서 연체한 자영업자와 전략적으로 상환을 미룬 자영업자 간의 차이를 제도적으로 판별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폐업 지원 쪽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최근 폐업사업자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사업자 수는 98만6000명으로,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