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창작산실 지원 선정 전시
조주현 큐레이터 기획…‘탈-인류세 뮤지엄’ 제안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언어는 근대의 도구였어요. 그 언어 아래 비인간은 배제되고 열등하게 여겨졌죠. 우리는 소리·후각·촉각 같은 언어 이전의 감각을 앞세우고 싶었습니다.”
26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내 아르코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창작산실 협력전 '드리프팅 스테이션–찬미와 애도에 관한 행성간 다종 오페라'는 ‘떠도는 미술관’이라는 파격적 모델을 내세워 인간 중심의 제도·언어를 비틀고, 비인간 존재와의 감응을 실험한다.
“원래 전시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기획자 조주현 큐레이터는 이번 프로젝트가 2021년 시작된 국제 다학제 네트워크 ‘드리프팅 커리큘럼’의 중간 경유지라고 설명했다. “애초엔 충남 천수만 철새도래지를 무대로 한 공공미술형 모바일 프로젝트였어요. 전시가 목적이 아니라 탈(脫)인류세 뮤지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었죠.”
‘드리프팅(Drifting)’은 정착·제도화·언어화된 흐름에서 이탈하는 행위다. 조 큐레이터는 “법·학교·뮤지엄 같은 근대 시스템을 해체하고 다시 세우려는 ‘비서사적 큐레이션’”이라며, 행성적 시간대를 사유하는 ‘행성 시학(Planetary Poetics)’ 개념 아래 감정·기억·공존의 감각을 확장한다고 강조했다.
20여년간 미술기관에서 일한 뒤 2021년 독립 큐레이터로 전향한 그는 예술·과학·환경을 넘나드는 다학제형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전시장에는 데이터, 사운드, 오브제, AR 등 다양한 매체가 뒤섞여 8팀이 완성한 ‘다종 오페라’로 연출됐다.
김정모는 관객의 발걸음 데이터를 ‘멸종 생명종 호출’로 변환하고, 천경우는 청각장애인의 ‘상상 속 새소리’를 구현한 '버드 리스너'를 선보인다. 장은만 아프리카 대왕달팽이 이주와 대만 원주민 여성의 기억 교차, 안정주·전소정·안데스는 비가시적 지질 데이터를 청각·촉각으로 전환하고, 하이조로익/디자이어즈(인도)는‘새의 시선’으로 펼치는 오페라 퍼포먼스로 인간 바깥의 서사와 감각을 탐색한다.
이번 전시는 끝이 아닌 ‘통과역’이다. 7월에는 천수만 철새도래지 현장 워크숍이 예정돼 있으며, 2027년에는 영국 리버풀예술대학 미디어고고학자들과 확장형 전시가 추진된다. “협업을 플랫폼 삼아 환경운동가·인문학자·행동주의자들과 다학제 실험을 계속할 겁니다. 전시는 떠돌고, 감각은 열릴 거예요.”
“몸으로 체험하면 와 닿아요”
영어로 쓰인 긴 전시 제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조 큐레이터는 “이 전시는 감각을 다시 구성하는 장치”라며 “찬미와 애도는 감정이자 윤리입니다. 작품이 낯설어도 몸으로 체험하면 자연스럽게 와 닿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은 “팬데믹 이후 꾸준히 이어온 기후위기 담론과 예술 실천을, 인류세 연구자·기획자들과 함께 심화·확장할 의미 있는 계기”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8월3일까지. 관람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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