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의무'의 역설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6.29 19:03

수정 2025.06.29 19:03

안승현 전국부장
안승현 전국부장


작년에 아들이 제대했다. 부대 앞까지 버선발로 뛰어가 맞이했을 때 안도감과 반가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걱정보다는 금방 끝났네"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었다. 요즘 현역병의 복무기간은 2년에 한참 모자란 1년 반이기 때문이다.

의대생들이 현역병으로 입영하는 숫자가 올해 1300명을 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연말까지 2000명을 넘을 거라고 한다.

의대생들은 이제 3년짜리 군의관 대신 18개월짜리 일반 병사를 택하고 있다. 어차피 가야 한다면 자기한테 뭐가 더 이득인지 따져봐야 한다. 3년과 1년6개월 사이에서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 현상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3년보다 18개월이 짧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대생들의 속내에는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강요하는 '의무'의 민낯과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다.

'공보의' '군의관'은 한때 의사들에게 주어지는 특혜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다 옛날 얘기다. 국방부 자료를 보면 연도별 의대생 현역병 입대자는 2021년 214명, 2022년 191명, 2023년 267명, 2024년 1363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10년간 장기복무에 지원하는 군의관 수도 감소 추세다. 지난 2023년에는 지원자가 단 1명도 없었는데, 현재 연 700명 수준인 군의관 지원자가 5년 뒤 50명으로 급감한다는 게 정부 측 계산이다.

의정 갈등이 있기 전 얘기지만, 3년이나 군의관으로 '썩느니'(학생 입장에서) 빨리 갔다 와서 전공의를 시작하는 게 낫다는 게 의대생들의 공공연한 얘기였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며 생명을 구하겠다던 의대생이, 군에서 생명을 구하는 일은 시간 낭비로 여기는 게 씁쓸한 현실이다.

국방부가 국군의무사관학교 설립을 검토한다고 한다. 군의관이 모자라니 아예 처음부터 군의관으로 키우겠다는 발상이다. 공공의료의 대의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의료계에서는 열악한 처우 개선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월급 200만원 받으며 오지에서 3년을 보내라고 하면 누가 가겠는가. 그 3년이 경력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을 비판할 논리도 없다. 이미 의학도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3년짜리 의무장교 대신 18개월짜리 일반병을 택하는 게 바로 그들의 투표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너무 많은 '의무'를 강요하는 건 아닐까. 군 복무도 의무, 공중보건의 복무도 의무. 그러면서 정작 그들이 받는 대우는 형편없다. 의무만 강조하고 권리는 외면하는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국군의무사관학교가 부족한 군의관과 공공의료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혹시 이것이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또 다른 '의무'를 만들어내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진짜 필요한 건 젊은 의사들이 기꺼이 공공의료에 헌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빅터 브룸의 '기대이론'(Expectancy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고, 그 성과가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그리고 그 보상이 자신에게 가치가 있을수록 동기와 행동이 커진다고 설명한다.

의무복무의 역설이 가진 맹점이 이런 것이다. 강제로 시키면 시킬수록 더 피하고 싶어진다는 것. 의무를 줄이고 보상을 늘리면 오히려 자발적 참여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늘 반대로 간다.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의무를 만들어낸다.
국군의무사관학교도 그런 발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젊은 의대생들이 군의관 대신 현역병을 선택하는 현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블랙코미디다. 생명을 구하는 일을 배운 사람들이, 정작 그 일을 하는 것을 피하려 한다.
이보다 더 큰 역설이 있을까.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시스템이다.

ahnma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