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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의 춤과 함께] 백조의 호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7.03 18:39

수정 2025.07.03 18:39

아름다운 음악·안무 조화
오데트·오딜 발레리나 꿈
고전 재해석 작품 큰매력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발레' 하면 떠오르는 작품, 오랜 시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은 아마도 '백조의 호수'일 것이다. 백조의 호수는 표트르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음악에 지그프리드 왕자와 밤마다 백조로 변하는 마법에 걸린 공주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발레작품이다. 음악이 정말 완벽하고 아름다운데,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을 안 본 사람들조차도 메인 테마곡을 알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1877년 모스크바에서 처음 백조의 호수가 공연되었을 때에는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1895년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의 새로운 안무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되었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두 안무가는 주역 무용수들의 마임과 테크닉을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조화롭게 안무하였고, 이바노프는 짝짓기 철을 맞은 백조들의 날갯짓을 오랫동안 관찰한 후 오데트와 백조의 아름다운 안무를 만들어내었다. 발레리나들은 호수에서 아름답게 떠 있는 백조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날갯짓을 하는데, 신비로운 호숫가를 배경으로 순백의 의상과 더불어 처연하고 아름다운 백조를 표현해낸다.

오데트와 오딜은 1인 2역으로 주역 발레리나는 순결한 오데트 공주와 악마의 딸로 매혹적인 오딜의 두 가지 역할을 하게 된다. 백조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안무와 백색의 튀튀는 오데트와 백조들의 청순하고 순결한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며, 반면 흑조는 매혹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을 표현하기 위해 블랙의 튀튀와 32회 푸에테 같은 고도의 테크닉으로 춤이 구성된다. 백조의 호수는 아름다운 음악과 안무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며 백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발레리나는 모든 발레리나의 꿈이기도 하다.

백조의 호수는 다양한 결말로도 재해석되었는데 오데트와 왕자가 마왕을 물리치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 오데트와 왕자가 함께 죽는 결말, 오데트는 죽고 왕자만 살아남는 결말 등 다양하다. 백조의 호수를 재해석한 많은 작품들 중 안무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모든 백조가 남자 무용수로 이루어져 남성 무용수들의 비중이 큰데 전통 클래식 백조의 호수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애정 결핍과 깊은 상처를 가진 왕자의 심리적 불안과 파국을 내용으로 하며 현대적인 배경의 스토리, 세련된 무대와 함께 백조의 모습을 형상화한 새로운 안무는 기존의 여성스럽고 우아한 백조의 모습이 아닌 남성 무용수들이 추는 역동적이고 강한 백조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블랙스완'은 무용수 한 명이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이라는 정반대의 역을 오가야 하는 '백조의 호수'가 모티브가 된 심리 스릴러 영화이다. 주인공은 뉴욕시티발레단의 순수하고 연약한 이미지의 발레리나로, '백조의 호수' 주역으로 간신히 발탁되지만 흑조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고충을 겪는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와 정반대의 강렬한 매력을 지닌 발레리나가 등장하면서 그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데 '무대에서 완벽하고 싶다'는 욕망에 그녀가 점점 변해가면서 자신의 도플갱어를 목격하며 분열증에 빠지는 무용수를 보여준다.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와 오딜, 선과 악의 대립, 극과 극의 두 꼭짓점에 있는 상반된 캐릭터를 짧은 시간에 표현해야 하는 발레리나의 고민을 흥미롭게 표현한 영화로 다양한 캐릭터를 작품에 맞게 표현해내야 하는 무용수의 입장에서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발레리나마다 고유의 아우라가 오데트에 어울리거나 오딜에 어울리거나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두 가지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캐릭터를 소화해낼 수 있는 폭넓은 연기력을 가진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고 연륜이 쌓이다 보면 자신만의 캐릭터를 표현해내게 되는 것이다. 전통적 틀을 깨는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다 보면 나 자신의 한정된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며 나를 발전시키는 자극이 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다운 나를 쌓아가는 밑거름이 되고 실패와 성공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양한 시도들이 더욱 많이 창작되길 기대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