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어디에도 없는 제도

최아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7.06 18:33

수정 2025.07.06 19:41

최아영 건설부동산부
최아영 건설부동산부
"처음 전세를 접하고 너무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죠. 외국에는 이런 제도가 없거든요."

최근 만난 한 취재원은 전세제도를 극찬했다. 목돈을 집주인에게 맡기고 일정 기간 거주한 뒤 맡긴 돈을 그대로 돌려받는 구조. 이 취재원의 눈에 전세는 단순한 계약을 넘어선 '기회의 제도'였다. 전세는 한국에서만 유독 발전한 독특한 주거 형태다. 전세가 제도화된 건 1970년대 이후다. 당시 고금리 환경에서 임대인은 전세금을 자금운용 수단으로 활용했고, 임차인에게는 자가를 마련하기 전 거쳐 가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다.

이후 집값 상승기와 맞물리며 전세는 자산 축적의 수단으로까지 기능해왔다.

하지만 구조적 한계도 분명했다. 집값이 오르면 전세금도 함께 오르며 세입자의 부담이 커지고, 하락기엔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지는 '깡통전세' 우려가 커진다. 이를 악용해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전세 폐지론은 수차례 언급돼 왔다. 그러나 실제로 시행된 적은 없다. 배경에는 '눈높이'가 있다. 델타항공의 글렌 하우엔슈타인 최고경영자(CEO)는 "한번 프리미엄 좌석을 타 본 사람은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전세 역시 마찬가지다. 한번 전세를 경험한 세입자 입장에선 매달 임대료로 생돈이 나가는 월세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대출규제 강화 조치는 시장에 적잖은 혼란을 불러왔다. 그간 정부는 전세 수요를 떠받치기 위해 전세자금 대출을 정책적으로 확대해왔지만, 별다른 예고 없이 입장을 바꿔 대출한도를 조였다. 전세대출 환경 축소는 전세시장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 문제는 시장과의 충분한 공감대나 사회적 논의 없이 제도의 핵심을 흔드는 결정이 내려질 경우 실수요자의 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의 축을 흔드는 결정일수록 충분한 설명과 설득, 그리고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전세는 분명 우리 사회에서 고유한 기능을 해왔다. 지금도 "그래도 전세만큼 좋은 제도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시장과 이용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 제도의 미래를 조율하는 것이다. 전세가 누군가에겐 기회였고, 또 다른 이들에겐 위기였다면 이제는 그 공존의 결과를 정리하고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답은 없을 수 있다. 다만 논의는 있어야 한다.
제도의 존속 여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이 제도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솔직한 대화다.

act@fnnews.com 최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