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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기업 방어용 차등의결권·포이즌필 머뭇댈 이유 없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7.06 18:33

수정 2025.07.06 19:42

집중투표제까지 밀어붙이는 여당
소송남발, 경영권 위협부터 막아야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 /사진=뉴스1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 /사진=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이달 임시국회에서 상법 추가 개정과 노란봉투법을 최우선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한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개정안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재계의 반대를 뚫고 지난주 국회에서 통과됐다. 여당이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며 밀어붙이려 한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두가지 사안은 야당의 저지로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여당은 이들 쟁점을 이달 중 추가로 처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까지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격화되는 트럼프발 관세전쟁과 글로벌 산업 대격변기를 맞아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신세다.

기업의 기를 살려 도전을 멈추지 않고 세계로 뛸 수 있게 모든 자원을 쏟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다. 성장동력을 잃은 한국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구원자는 다름 아닌 기업이다. 백방으로 지원해도 쉽지 않은 판인데 기업에 이토록 족쇄만 채워서 될 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주 개정된 상법 조항만으로도 경제계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분별한 손해배상소송 남발과 해외 헤지펀드의 경영권 위협이 발등의 불이 됐다. 투기성 자본이 국내 기업을 장악하고 배당 확대, 핵심자산 매각 등을 요구해 결국 국부유출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와 여당의 공정시장, 투명경영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후유증을 보완할 제도 도입이 먼저 됐어야 한다. 순서를 놓쳤다면 지금이라도 보완책 마련을 서두르는 것이 맞는 일인데 되레 처리 못한 조항 추가 개정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 경영의 어려움과 방어수단 마련은 외면한 채 상법 추가 손질만 서두른다면 기업 심리는 크게 위축될 것이다. 논란 많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조항 논의는 추후로 미루고 우리만 뒤떨어진 기업 방어수단 확보에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가 국회 강연에서 "국내 제조업 기업들이 주주들의 현금인출기가 되는 순간 우리나라는 끝"이라고 했던 말이 현실이 될 수 있는 문제다.

재계가 요구하는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 황금주 3종 방어권 세트를 더 이상 머뭇댈 이유가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기업의 경영권 보호 수단이 사실상 없는 것과 같다. 포이즌필은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할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다. 주요 7개국(G7) 모두가 시행 중이다. 국내에선 이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2010년 국회에 제출됐지만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를 다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경영권 침해 우려에 맞서 대주주 보유주식에 의결권을 더 주는 차등의결권, 회사 중대사안에 거부권을 부여하는 황금주 제도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 쿠팡이 지난 2021년 미국 증시에 직상장했던 것도 차등의결권 요인이 컸다. 쿠팡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당시 보유주식에 주당 29배의 차등의결권을 부여받았다.
차등의결권이 있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절반 이상에 이른다.

구성요건이 불명확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판을 받는 배임죄 개선도 말할 것 없다.
기업인들이 사법리스크만 신경을 쓰면 투자도, 혁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