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흔들리는 가을풀 찰나의 아름다움.. 일본미학에 깃든 아와레를 느끼다 [Weekend 문화]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7.11 04:00

수정 2025.07.11 04:00

한일 국교 정상화 60년 기념 공동 개최
국중박 '일본미술, 네가지 시선' 특별전
에도시대 병풍·다도 도구·고소데·노 가면
日 중요 문화재 7건 포함 62건 한자리에
순간에 감동하는 '아와레' 정서 오롯이
"고전문학·시가 등 문화 아우르는 전시"
18세기 에도 시대 오가타 고린 '가을풀무늬 고소데'
18세기 에도 시대 오가타 고린 '가을풀무늬 고소데'
17세기 에도 시대 전(傳) 도사 미쓰오키 '겐지모노가타리 중 제40첩 미노리'.
17세기 에도 시대 전(傳) 도사 미쓰오키 '겐지모노가타리 중 제40첩 미노리'.
17세기 에도 시대 작가 미상 '무사시노 들판을 그린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7세기 에도 시대 작가 미상 '무사시노 들판을 그린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화려한 장식의 봉황과 절제된 다도 그릇, '찰나'라는 순간의 가을 풀 무늬, 삶에 쉼표를 주는 노(能) 가면.

일본 전통 미술은 한국과 비슷하면서 달랐다. 일본 문화에는 벚꽃이 피고 지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듯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면서도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정서 '아와레(あはれ)'가 있다. 한 계절 잠시 꽃을 피우고 바람에 흔들리는 자연에서 느끼는 아와레는 일본 미술 작품들에 오롯이 담긴 듯했다.

일본 전통 미술을 꾸밈·절제·찰나·유희 4가지 주제로 정리한 대규모 전시가 서울 용산에서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도쿄국립박물관과 공동으로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특별전을 다음 달 10일까지 상설전시관 3층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전시는 두 기관의 소장품 62건을 한자리에 모았다. 도쿄국립박물관 측은 일본 중요문화재(한국의 '보물'급) 7건을 포함해 40건을 출품했고, 이 중 38건은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출품된 작품들을 △화려한 장식성 △절제된 미 △자연의 섬세한 변화에 대한 감동 △유쾌하고 재치 있는 미적 감각 등 4가지 시선에 주목해 전시에서 풀어냈다.

주요 전시품으로는 에도 시대인 18세기 가노 히데노부의 '봉황공작도병풍', 16~17세기 다도 도구인 '시바노이오리 물항아리', 에도 시대 장식 화풍의 거장 오가타 고린이 그린 '가을풀무늬 고소데(기모노)', 전통 공연 예술인 노(能)에 사용된 '노 가면 샤쿠미' 등이 포함됐다.

1부 '꾸밈의 열정'에서는 장식성에 초점을 맞춰 선사 시대 토기 중 장식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 조몬 토기부터 에도 시대 금박 그림 병풍 등을 소개한다. 깊은 바리, 향로 모양 토기, 꽃 새무늬 발, 매화나무무늬 접시, 벚꽃무늬 향 놀이 도구상자, 길상무늬로 장식된 옷 모양 이불, 금박에 화려한 색으로 봉황과 공작을 그린 병풍, 장식 종이에 쓴 와카를 장식적인 서체로 쓴 서예까지 화려한 장식에 열정적인 일본 미의식을 보여준다.

2부 '절제의 추구'는 일본의 다도 문화를 중심에 두고 강조했다. 화려함과 정반대의 '절제미'를 보여준다. 줄무늬, 잔 벚꽃무니만 있는 일본 기모노 복식 고소데를 비롯해 베개 문양 꽃병, 붉은 칠 대접, '아마데라'라 불린 구로라쿠 찻잔, '시바노이오리'라 불린 물항아리 등이 대표적이다.

3부 '찰나의 감동'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면서도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찰나(아와레)' 정서를 조명했다. 대표작인 오가타 고린의 '가을 풀 무늬 고소데' 기모노는 이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어 4부 '삶의 유희'에서는 유쾌하고 명랑한 '유희(아소비)'로서 전통극인 '노'와 교겐 도구들, 풍속화 우키요예 등이 소개됐다. '아소비'는 '노'에 사용된 의상 3점과 '요로보시', '사쿠미', '오지', '오토' 등 가면들에 표현돼 있다.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그린 병 풍과 꼬리잡기하며 노는 동자들을 그린 병풍은 삶의 유희를 보여주는 미술품이다.

특히 전통 수묵화의 틀에서 벗어나 먹의 번짐과 즉흥성을 활용해 자유로운 회화 세계를 펼친 화가 이토 자쿠추의 '수묵유도권'은 그림 그리는 것을 놀이처럼 여긴 화가의 인식을 보여준다. 다만, 이번 전시는 일본 미술의 전반적인 성격을 강조하다 보니 시대성이 생략돼 일본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는 평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상설전시관 3층에 있는 기존 박물관 '일본실'과 함께 참관하면 도움이 된다.

권강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이번 전시에 대해 "미술품 장르나 시대 등을 다루는 것이 아닌 미적 감수성과 정서를 다루는 전시"라며 "여기서 다루는 개념은 좁게는 일본 미술이지만, 넓게는 일본 문화 전반의 감성적이고 문화적 맥락을 함께 조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와레 감정도 다루는 만큼 이 전시는 미술품을 다루는 전시 이상으로 전시 내용을 오롯이 이해하려면 문학에서의 '아와레' 개념도 필요하다"며 "전시장 곳곳에 일본 고전 문학이라든지 일본 고유 시가인 '와카'의 내용 등 미술과 문학을 아우르게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평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