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업 막는 규제 54건 정리
가장 시급한 건 기초연구법상 ‘고정벽체와 별도 출입문을 갖춘 공간’만 기업부설연구소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첨단 전략산업은 기술 변화에 따라 인력의 재배치가 빈번하고 연구실, 사무실 등 아이디어 융합을 위해 업무의 벽을 허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업부설연구소 연구인력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반드시 4면 콘크리트 벽과 출입문을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 공장에 ‘수평 40m 간격’으로 설치해야 하는 진입창 규제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공장은 위험물을 취급하는 가스룸과 외부오염물질 유입을 극도로 통제하는 클린룸이 크게 위치해 있어 ‘수평거리 매 40m마다 소방관 진입창을 설치해야 한다’는 규제가 반도체 공장의 소방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게 대한상의 설명이다.
새 정부가 집중하는 신재생에너지 규제도 개선 대상에 올랐다. ‘논밭 위의 태양광’이라 불리우는 영농형 태양광 사업은 식물을 강렬한 태양광으로부터 보호하고 전기도 만드는 아이디어로 남태평양 국가들에서 각광 받고 있다. 하지만 이 태양광은 농지법상 농토 이외의 일시적 타용도 사용 허가 기간이 최장 8년으로 제한돼 있다. 당초 농지의 본래 목적(식량 생산)을 보전하고, 무분별한 비농업적 용도 전환을 막기 위한 취지에서 비롯된 규정이지만 에너지 전환과 농촌소득 다각화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태양광 발전시설의 이격거리도 낡은 규제로 꼽혔다. 이 시설은 주거지나 도로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기준을 두고 있는데, 과학적인 거리기준이라기 보다는 소음, 미관 등 주민 민원에 기인해 지역마다 100m에서 1000m까지 제각각이다. 대한상의는 "이격거리가 클수록 적정 부지 확보 자체가 어려워 사업이 좌초되는 일도 있다"며 규제 개선 필요성을 지적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공지능(AI) 인식기술이나 공유미용실 설비도 마찬가지다. 반려견 얼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면 AI가 개체별 특징을 인식해 구별하는 기술이 개발됐지만, 현행 동물등록제는 ‘내장형 칩’이나 ‘외장형 인식표’ 등 과거 물리적 식별 방식만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이밖에도 반도체공장 방화구획 설정기준 완화, 소형모듈원전 산업 활성화 지원 법령 개선, 글램핑용 조립식 돔텐트 관련 규제 완화 등 신산업을 가로막는 구시대적 규제 등을 포함, 50여건을 건의서에 담았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새로운 시도나 산업에 대해 열린 규제로 다양한 성장 원천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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