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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째 전기·수도 끊겨 라면만"…가평 수해 주민 고통 가중

연합뉴스

입력 2025.07.23 14:24

수정 2025.07.23 14:24

중장비 진입 어려워 복구 더뎌…죽어가는 농작물 바라만 볼 뿐
"나흘째 전기·수도 끊겨 라면만"…가평 수해 주민 고통 가중
중장비 진입 어려워 복구 더뎌…죽어가는 농작물 바라만 볼 뿐
(가평=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이 포도들이 환자로 치면 숨이 거의 넘어가기 직전이야. 뭐라도 해주고 싶지만 밭이 이 모양이니 혹시라도 나무가 9월까지 기적적으로 버텨 수확할 수 있도록 기도할 뿐이지."
집중호우가 휩쓸고 간지 나흘째인 23일 오전, 가평군 상면에 있는 한 포도밭 주인 A씨는 잎이 시들고 뿌리가 드러난 포도나무 앞에서 힘겹게 말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20일 새벽, 인근 야산에서 내려온 토사와 바위가 이 포도밭을 덮쳤다.

3일이 지난 이날도 포도밭 경계 철장은 무너지고 큰 돌들과 진흙이 바닥에 쌓여 있어 당시 상황을 보여줬다.

수해 복구 지원 나선 맹호부대 (출처=연합뉴스)
수해 복구 지원 나선 맹호부대 (출처=연합뉴스)

봉지에 싸인 포도들은 비교적 무사해 보였으나 A씨는 "수확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당장 나무에 응급처치를 해야 되는 상황이지만, 진흙이 쏟아지며 토질도 바뀌고 바위들이 쌓여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며 "하나당 수십 킬로그램은 될 저 바위들은 돈을 줘도 치워준다는 사람이 없어서 군인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혜산진여단 장병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토사를 치우며 무거운 돌을 날랐다.

하지만, 중장비가 들어오기 어려운 위치라 단시간에 포도밭을 복원하고 작물들에 필요한 처치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홍수로 건물 1개동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하천에 잠겨버린 조종면에서 식당 여주인 B씨는 근처에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폭우가 내린 이곳에는 아직도 산에서 내려온 물이 세차게 흘러 길을 덮었다.

이 건물에서 10여년간 운영된 B씨의 식당은 인근 주민들이나 군부대 장병들에게는 '알탕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지금 B씨의 가게는 흔적은 무너진 건물 1층 찌그러진 간판으로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무심히 푸른 하늘 (출처=연합뉴스)
무심히 푸른 하늘 (출처=연합뉴스)

B씨는 "가게에 10년간 모아온 사람살이들이 다 없어졌다"며 "지금도 물건이 상하고 떠내려가고 있을 텐데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답답한 마음에 매일 여기 나와 앉아 있다"고 말했다.

큰 피해를 본 가평군 조종면 신상리 마을은 나흘째 전기와 수도가 끊긴 상태다.

74년 전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냈다는 C씨는 마을 옆 밭에 나와 애꿎은 작물들을 만졌다.

C씨는 "뻘밭이 된 집 안 청소도 하고 밭도 돌봐야 하지만 물이랑 전기가 안 들어오니 가스 버너로 물을 사와 라면이나 끓여 먹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선풍기도 못 트니 집 안에 있으면 너무 더워 일단 나와서 살아남은 작물들이나 만지고 있다"고 전했다.

많이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C씨는 "그 엄청난 물난리에 살아남은 것만으로 감사하다"며 "70여년을 이곳에 살았지만 그렇게 무서운 비는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다.

수해 복구 돕는 자원봉사자들 (출처=연합뉴스)
수해 복구 돕는 자원봉사자들 (출처=연합뉴스)

가평지역에서는 지난 20일 시간당 최대 76㎜의 기습 폭우가 쏟아지면서 7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으며 재산 피해는 34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상당 지역에는 여전히 전기나 물이 끊긴 상태고 도로가 유실되거나 토사가 쌓이며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곳도 많다.

정부는 지난 22일 가평을 포함한 충남 서산·예산, 전남 담양, 경남 산청·합천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했다
jhch79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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