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 속도 못 따르는 대책…"반복적 재난, 언제까지 두고봐야 하나"
하천 범람·도심 홍수·산사태 등 방재 대책 전반 점검 필요
[호우대책 긴급점검] ③ 땜질식 처방은 그만…근본부터 다시 세워야기후 변화 속도 못 따르는 대책…"반복적 재난, 언제까지 두고봐야 하나"
하천 범람·도심 홍수·산사태 등 방재 대책 전반 점검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극한 호우와 같은 이상기후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는데도 방재 대책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불가항력적 재난'의 반복 흐름을 끊을 근본적 대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준설한 하천도 범람…홍수 대책 '한계'
강과 하천이 범람하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진다.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닷새간 극한 호우로 범람한 경기 가평 조종천에서는 3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막대한 재산 피해를 냈다.
특히 교각 월류 등으로 피해가 컸던 곳은 2023년 11월 이미 준설 작업이 이뤄진 구간이지만 범람을 막지 못했다.
국가 주요 강·하천의 경우 100∼200년 주기, 중소 하천은 50∼80년 주기의 홍수에 견디도록 대비하지만,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하천 범람 대책이 넘친 강물을 펌프로 퍼내거나 주민 대피령을 내리는 데 그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구 동구 금강동 인근 주민은 "강이 넘치면 양수기로 물을 퍼낸다고 해도 버릴 곳이 없다. 침수된 마을에 물을 버릴 작정인가"라며 "반복적 재난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느냐"고 쓴소리를 냈다.
강과 하천 범람을 막으려는 준설과 제방 개선 등 예방적 홍수 대책도 한계를 드러냈다.
울산에서는 수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댐 기능 확장을 요구하고 있다.
용량 부족으로 연평균 5∼6회 월류가 발생하는 회야댐에 수문을 설치해 홍수 조절 능력을 향상해 달라는 취지다.
울산시 관계자는 "자연 월류 대신 수문을 설치하면 저수량이 기존 용량보다 30%가량 늘어나 홍수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빗물 빠질 곳 없는 도심 홍수 대책은
하천이 범람하지 않더라도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발생하는 '도심 홍수'도 풀어야 할 과제다.
현재 시설과 도시 배수 능력은 극한 호우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분석한다.
대구의 경우 20년 빈도(시간당 61.1mm)의 호우를 버틸 수 있는 곳은 4곳, 30년 빈도(시간당 65.2mm)는 7곳, 50년 빈도(시간당 70.2mm)는 3곳에 불과하다.
배수 펌프장에서 보낸 물을 하천으로 다시 내보내는 도심 내 하수관로 역시 짧은 시간에 쏟아져 내린 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
전계원 한국방재안전학회 회장은 "지금 설치된 배수시설로는 침수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요즘에는 초 극한 호우가 잦은 만큼 도심지의 배수시설 규모를 확장해 용량을 더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심 지하에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대심도 빗물 터널'을 조성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류용욱 전남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상기후 현상이 잦아져 이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도심의 구조적 한계와 복합적 요인을 고려하면 지하 공간을 활용해 순간적으로 비를 저장했다가 배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땅이 빗물을 흡수할 수 있는 도심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종필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도시가 개발되면 녹지를 포함해 비를 흡수할 수 있는 땅(투수층)이 사라지게 된다"며 "이번에는 불가항력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투수층이 많았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 취약 지역 아닌 곳에서 잇단 산사태…"지정 기준 보완해야"
가장 큰 인명피해를 유발하는 산사태 대책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남 산청에서는 지난 19일 하루에만 300㎜에 육박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인명피해를 수반한 산사태가 6곳에서 발생했다.
이 가운데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단성면 방목리뿐이었다.
더욱이 산청은 올해 대형 산불이 발생해 광활한 산림이 잿더미로 변하면서 산사태 등 재난 방지의 사각지대가 되고 말았다.
경기 가평에서도 이번 호우로 52건의 산사태가 발생했는데, 5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3곳 모두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된 곳이 아니었다.
취약지역 지정 기준과 위험경보 방식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장석환 대진대 스마트건축공학부 교수는 "기후환경이 (극한으로) 변하고 있는 만큼 산사태 취약지역 평가 때 강우 강도도 포함해야 한다"며 "산사태 위험 경보 시스템도 지금보다 지역을 세분화해 실시간으로 알리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도 "집중 호우 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지역을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시점"이라며 "여러 경우의 수를 판단해 수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지점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예방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훈 김솔 윤관식 허광무 김도윤 천정인 기자)
in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저작권자 ⓒ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