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또래보다 작고 성장이 더디다고 느껴질 때 부모들이 쉽게 떠올리는 해결책이 있다.
2022년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아이에게 건강기능식품을 먹이는 부모가 37.8%에 이르고 그 중 15.2%가 키 크는 영양제를 먹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21년 식약처 발표에서도 키 크는 영양제의 시장 규모가 2017년 67억 원에서 2021년 619억 원으로 10배 가까이 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시장이 갑작스럽게 성장한 데에는 키 크는 영양제의 높은 가격도 한 몫한다. 업체들은 보통 6개월 이상을 꾸준히 먹이라고 권하는데 그 비용이 1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성장기 내내 계속 먹이려면 1000만 원 이상도 각오해야 한다. 과연 이렇게 높은 비용을 들일 만큼 효과가 있을까? 그리고 식품은 약리작용이 없다. 건강기능식품의 효과는 어디까지나 식품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아이의 성장이 정말 더뎌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키 크는 영양제에 기댈 것이 아니라 전문 병원을 찾아야 한다.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을 받아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칼로리 섭취가 부족한 것이라면 식사량을 늘리고,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같은 특정 영양소를 잘 안 먹는 것이 문제라면 식품과 영양제로 적극적으로 보충하고, 정말로 검사 결과 성장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있다면 호르몬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이 외에도 운동을 시킨다거나, 살을 빼게 하고 과식을 못하게 한다거나, 밤에 잠을 잘 자게 하는 등 생활습관을 개선시키는 것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시기는 생각보다 짧다. 그 황금 같은 시기를 과학적 근거도 없는 키 크는 영양제에 낭비하지 않길 바란다.
성장호르몬은 일정한 수치를 유지하는 호르몬이 아니라 자극에 의해 박동성 패턴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어떤 자극이 성장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주는지 파악한다면 생활에서 이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성장호르몬 분비를 자극하는 5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일찍 자고 깊게 자기
수면 시작 후 1시간 내, 첫번째 비램수면이 시작되고 몇 분 안에 가장 높은 수치의 성장호르몬이 분비된다. 비램수면의 가장 깊은 3, 4단계 수면 상태에서 성장호르몬이 폭발한다. 하루 분비량의 거의 50%가 이때 분비된다.
이것은 원활한 멜라토닌 분비로 서캐디언 리듬이 잘 형성될수록 성장호르몬이 원활하게 분비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어린아이와 청소년은 낮에 충분한 햇빛을 보아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적어도 8시간 이상의 충분한 숙면을 취해야 한다.
강도 높은 운동하기
운동은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한다. 운동이 성장호르몬을 자극하는 원리는 아직까지 완벽히 규명되지 않았다. 운동을 하면 생성되는 카테콜아민(뇌의 신경조직에서 생성되는 신경전달물질)로 호르몬 기능을 한다, 젖산, 일산화질소 등에 의해 분비가 자극된다는 주장이 있고, 운동시 체액의 산-염기 균형의 변화로 인해 분비가 자극된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운동이 성장호르몬을 더 자극하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팔굽혀펴기, 플랭크, 스쿼트, 덤벨, 데드리프트 등 근력을 키우는 운동이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고, 과격한 유산소운동이 더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운동의 종류에 따라, 나이와 성별에 따라 효과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어떤 운동이든 매일 꾸준히 1시간 이상 약간 힘겨울 정도로 하는 것은 성장호르몬 분비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 또한 운동을 하면 지방이 줄고 근육이 늘어 이 역시 성장호르몬 분비에 도움이 된다.
간헐적 단식하기
간헐적 단식을 하면 성장호르몬 분비가 증가하는 것이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1988년 연구를 보면 성인남성이 식사를 한 날에 분비된 성장호르몬과 5일 동안 금식을 마친 날에 분비된 성장호르몬을 비교한 결과 금식을 마친 날 성장호르몬이 더 자주 분비되고 1회 분비량도 최대 2배로 늘고 총 분비량은 4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 연구에서도 9명의 남성에게 2일 동안 금식을 시킨 결과 하루 성장호르몬 총 분비량이 5배 치솟았다. 단식이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이유는 배가 고프면 위에서 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인 그렐린이 분비되고 이것이 시상하부의 그렐린 수용체와 결합하여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또 단식을 하면 몸이 저혈당 상태가 되는데 이 역시 성장호르몬 분비를 상승시킨다. 단식하는 동안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지방세포가 분해되는 것도 성장호르몬 분비를 자극한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실천하기 좋은 간헐적 단식 방법은 하루 중 8시간 동안 식사를 하고 나머지 16시간 동안 단식을 하는 것이다. 혹은 일주일 중 5일은 평소대로 먹고 나머지 2일 동안 칼로리를 대폭 줄이는 방법도 있다.
아이들의 경우는 한창 자라는 성장기라서 단식을 권하기는 어렵다.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하게 하되, 식사와 식사 사이 아무것도 먹지 않게 하고 배고픔을 느낄 정도의 상당한 간격을 두는 것이 좋다. 저녁 식사 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들면 다음날 아침을 먹을 때까지 10시간 이상의 공복기를 가질 수 있다.
살 빼기
비만이라면 살을 빼자. 비만인 사람들의 성장호르몬 분비는 정상 체중인 사람들에 비해 빈도, 생산량, 총량이 모두 현저히 적다. 비만인은 인슐린을 통한 저혈당 유도, 아미노산 보충, L-도파(도파민의 전구체), 클로니딘(혈압저하제) 등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모든 의료적 시도에 대해서도 정상 체중인 사람들에 비해 반응이 떨어진다. 그만큼 비만이 성장호르몬 분비 시스템에 결함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특히 아동이 비만이 되면 초반에는 또래보다 성장이 빠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춘기가 시작되면 정상이나 마른 아이들보다 성장 속도가 둔화되기 시작한다. 2차 성징이 이르게 나타나는 성조숙증을 보일 확률도 높아진다.
1999년의 연구는 정상 체중에 정상 키를 가진 24명의 아동과 정상 체중에 정상 이하 키를 가진 31명의 아동, 그리고 10명의 비만 아동의 성장호르몬 분비를 비교했다. 그 결과 정상 키와 정상 이하 키 아동에게는 성장호르몬 분비에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비만 아동들은 성장호르몬 분비가 현저히 낮았다.
또한 이들 모두에게 24시간 동안 칼로리를 제한하자 정상 키와 정상 이하 키 아동들의 성장호르몬 분비량이 늘었고, 비만 아동들도 수치가 거의 정상으로 바뀌었다. 비만 아동이 성장에 문제를 보인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키 크는 영양제가 아니라 살을 빼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가바 섭취하기
가바를 충분히 섭취하는지 살펴본다. 가바는 감마-아미노부티르산의 약자로 뇌에 존재하는 아미노산의 일종이다. 보통 아미노산은 여러 가지가 합쳐 펩타이드를 이루고 단백질을 조성하는데, 가바는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가바의 역할은 중추신경계에 억제 신호를 보내어 긴장과 흥분을 가라앉히고 진정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수면을 유도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2008년 연구에 의하면 성인 남성이 가바 3그램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운동을 했을 때 혈중 성장호르몬 수치가 최대 400% 치솟았다고 한다. 또한 가바는 긴장을 완화하는 호르몬이라서 깊은 수면을 취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깊은 수면은 성장호르몬 분비를 상승시키는 주요 요인이므로 가바의 섭취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가바의 섭취량을 더 늘린다고 해서 키가 더 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통해 충분히 섭취한다면 영양제를 별도로 먹는 것은 불필요하다.
가바는 토마토, 시금치, 감자, 고구마, 귀리, 보리, 콩, 버섯 등에 풍부하다. 또 비타민B6를 먹으면 이것이 체내에서 여러 단계로 분해를 거치면서 가바가 합성된다. 비타민B6는 참치, 연어, 닭, 바나나, 두부, 시금치, 파파야, 오렌지 등에 풍부하고 영양이 강화된 시리얼에도 풍부하다. 비타민B6의 어린이 일일 권장섭취량은 1㎎ 안팎이다. 균형 있는 식사를 하면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만약 아이가 편식이 심해서 유난히 가바나 비타민B6가 함유된 음식을 기피한다면 그때는 영양제 섭취를 고려해볼 수 있다. 비타민B6는 과다 섭취할 경우 부작용을 겪을 수 있으므로 의사와 상담하여 복용량을 정하는 것이 좋겠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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