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다음 달 1일 상호관세 발효 1주일을 앞두고 대미 협상이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 강력한 수출 경쟁국 일본이 상호관세를 15%로 전격 낮췄고 유럽연합(EU)과 중국도 곧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마음 급한 우리 협상팀을 대하는 미국측 태도도 유례가 없다. 미국측은 일방적으로 회담을 취소해 한국 협상단을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처럼 큰 금액을 내면 관세를 낮출 수 있다"라며 노골적인 압박을 가한다.
우리가 늦게 협상단을 꾸린 만큼 속도를 더 내줄 것을 기대했으나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혹독하다. 미국측이 25일 예정됐던 '2+2 회담'을 취소하면서 둘러댄 사유도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만나기로 한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긴급 호출로 회동을 취소했다. 이 만남을 위해 미국에 급파된 위 실장은 회동 하루 전 일방 통보를 받고 빈손으로 귀국했다. 2+2 회담을 위해 출국하려던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행기 탑승 직전 취소 소식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우리측 협상력을 떨어뜨리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협상 시한 전까지 '2+2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많지 않다. 관세 키맨인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28~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중국과 3차 무역 협상에 돌입한다. 한미 정상간 회담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5∼29일 스코틀랜드 방문 일정이 있다. 이러다간 우리만 다음달부터 25% 상호관세와 최대 50%에 달하는 품목 관세를 한꺼번에 물어야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측이 원하는 것은 최소한 일본 수준의 협상이다. 일본은 5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와 자동차·쌀 시장 개방을 조건으로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췄다. 애초 일본 측이 제시한 규모는 3000억달러였지만 일본은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미국은 자국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이 첨예한 경쟁관계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시한을 코앞에 두고 미국이 한국 협상팀을 박대하고 딴전을 피우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은 현지 언론을 통해 "한국이 일본 합의를 읽을 때 욕이 나왔을 것"이라며 한국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할 뜻을 내비쳤다.
우리측은 쌀·소고기 시장 확대는 빼고 미국산 원유와 항공기 등을 포함한 '1000억 달러+알파' 대미 투자를 제안했다고 한다. 미국에 급파된 김정관 산업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러트닉 상무장관과 만나 적극적인 제조업 협력을 약속하고 알래스카 투자 참여도 논의했다. 문제는 미국의 눈높이다. 미국은 한국에도 4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말하자면 약속어음이 아닌 현금을 내놓기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선 무리한 액수다. 협상팀은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협상 전략을 짜야한다. 앞서 타결된 국가들 사례를 볼 때 농산물 개방에 유연한 자세도 필요하다. 대신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합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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