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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대위법적 구조를 완성한 서양 음악사의 거장 [역사&오늘]

뉴스1

입력 2025.07.28 06:01

수정 2025.07.28 06:01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출처: Elias Gottlob Haussmann, 1748,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출처: Elias Gottlob Haussmann, 1748,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750년 7월 28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18세기 바로크 음악의 거장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세상을 떠났다.

바흐는 1685년 3월 31일 태어났고,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읜 후 형을 통해 음악 교육을 받았다. 그는 아른슈타트, 뮐하우젠, 바이마르, 쾨텐을 거치며 교회 오르가니스트, 궁정 음악가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다. 특히 바이마르에서는 오르간 음악의 대가로 명성을 얻었다. 이 시기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등 그의 대표작들이 탄생했다.



바흐 생애의 정점은 172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던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의 음악감독 시기였다. 이곳에서 그는 수많은 칸타타, 오라토리오, 미사곡을 작곡했다. 또한, 토마스 학교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시립 악단인 콜레기움 무지쿰을 이끌었다. 그의 작품들은 당대 교회 음악의 최고봉이었고, 깊은 신앙심과 완벽한 대위법적 기법이 결합된 독보적인 예술성을 보여줬다.

바흐는 200곡 이상의 칸타타, 수많은 푸가, 토카타, 파사칼리아 등의 오르간 곡,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를 위한 독주곡, 그리고 미사 B단조, 마태 수난곡, 요한 수난곡과 같은 대규모 합창곡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완벽한 대위법적 구조, 풍부한 화성, 그리고 깊은 감정 표현이 특징이다.

바흐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적 언어를 완벽하게 숙달하고 발전시킨 동시에, 대위법적 형식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그는 당시의 모든 음악 양식을 흡수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재창조했다.

바흐의 사망 이후 한동안 그의 음악은 잊히는 듯했지만, 19세기 펠릭스 멘델스존에 의해 '마태 수난곡'이 재발견되면서 그의 음악은 다시금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오늘날 바흐의 음악은 전 세계 콘서트홀과 교회에서 끊임없이 연주되며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