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아트로 레알의 예술총감독과의 미팅을 마친 후, 놀라움에 극장을 쉬이 떠날 수가 없었다. 단지 정교하게 정비된 시스템이나 탄탄한 재정구조 혹은 조직의 규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놀라웠던 것은 그들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들은 오랜 시간 사랑받은 공연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면서도 다른 극장과 새로운 프로덕션을 대담하게 공동 제작해 나간다. 그랑데 오페라, 현대 오페라 등도 겁 없이 도전한다. 그들은 전통에만 안주하지 않고, 시대에 발맞춰 변화하고 도전하는 것이 느껴졌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열망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또 그들은 무대 위 작은 디테일을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끈질기게 연습했다. 작은 디테일을 위해 리허설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우리는 대관 시간에 쫓겨 정해진 무대 리허설 횟수만큼만 리허설 기회를 가질 수 있고 다양한 예술적 아이디어를 구현하기에는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해 창의성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그들과 함께 앉아 협업을 논의하면서 한없는 부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과의 만남이 좌절로만 끝나진 않았다. 오히려 소중한 전환점을 선사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집요한 의지와 시야의 확장일지도 모른다. 유럽극장과 제작 환경은 다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새로운 영역, 더욱 창의적이고 유연한 방법들을 모색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끈질기게 지속함으로써 우리만의 색이 담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간들이 축적된다면 예술은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신념이 되고, 한국의 오페라는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언어로, 세계를 감동시킬 날이 곧 올 것이라 믿는다.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분명 만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예술이 만들어내는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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