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든든한 외교자산 된 K컬처 신드롬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7.28 18:37

수정 2025.07.28 18:37

김경수 정치부 부장
김경수 정치부 부장
한국 문화산업 'K컬처' 팬덤이 글로벌 정치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전 세계 10대들의 일부 팬덤이라고 생각했던 K팝은 이미 외교 분야로 파고들고 있다.

실제로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K팝 관련 콘텐츠가 거론돼 화제가 됐다. 이달 중에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K팝을 모티브로 만든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대화 주제로 언급됐다. K팝 음악이 다수 수록된 이 작품은 최근 빌보드차트와 스포티파이, 넷플릭스에서 역대급 신기록을 내고 있다.

일부 테마곡은 아카데미상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렛잇고' 주제가로 유명한 '겨울왕국' 신드롬을 넘어서고 있다는 평가다.

K팝 음악과 춤을 테마로 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전 세계 다양한 연령대에서 호평받고 있다. 일부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 작품을 보여주다가 본인들까지 한국 문화에 빠져들고 K팝에 중독됐다고 한다.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아직 이 작품을 보지 못했지만 '오징어 게임'은 재미있게 봤다면서 한류 콘텐츠에 대한 친근감을 드러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얼어붙은 외교가를 녹이는 '아이스 브레이커'가 된 셈이다.

루비오 장관은 최근 한미 관세협상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백악관 인사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조현 외교부 장관 등이 한미 관세협상에서 루비오 장관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그동안 미 백악관 유명인사들과 K팝의 인연도 종종 거론돼 왔다. 관세협상으로 연일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직계가족 중에도 K팝 팬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전 백악관 보좌관은 "큰딸 아라벨라가 K팝에 열광하며, 동생들과 방에서 K팝 춤을 따라 한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당시 이방카는 딸이 K팝 그룹 엑소의 팬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행사 중 엑소를 만난 뒤 "우리 아이들이 당신들 팬이다"라며 반가워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막내아들 배런 트럼프조차 K팝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미국 10대들 사이에서 몇년 전에 퍼지기도 했다. 온라인 청원 사이트에서 "배런은 K팝을 사랑한다"는 주장이 올라오면서 이를 소재로 '배런 구하기' 캠페인도 벌어졌다. 배런이 백악관에 갇혀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 밈이 유행한 것이다. 사태가 확산되자 급기야 백악관까지 나서 해명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K팝 가수들은 글로벌 외교무대에서 이미 역할을 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은 K팝 가수 최초로 유엔총회에서 직접 연설까지 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닌 3번씩이나 했다.

또한 전 세계 21개국 정상들이 모여 오는 10월 31일~11월 1일 경주에서 열리는 APEC 홍보대사에 K팝 가수 지드래곤이 최근 선정돼 주목을 끌었다.

때론 풀리지 않는 외교협상에서 놀이문화 공감대가 타결책이 되기도 한다. 김현종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교착 국면에 이르자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기록 이야기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면서 곧바로 타결에 성공한 사례를 밝힌 바 있다. '야구 외교'가 빛을 발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조차도 정상들 간 만남에서 골프외교를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 이처럼 음악뿐만 아니라 스포츠·예술분야는 국경과 언어장벽을 넘어 소통 공감대를 먼저 이루게 된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외교협상장을 녹여낼 좋은 매개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K컬처에 매료된 미국 내 각계각층의 자발적인 지한파 형성은 천문학적 자금 동원이 필요한 대미투자보다 더 큰 외교적 후방지원군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K팝의 보이지 않는 글로벌 외교력 확대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기대가 크다.

rainma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