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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제2의 '자치혁명'을 기다리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7.28 18:41

수정 2025.07.28 21:54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
그릇의 모양에 따라 담겨진 물의 형태가 달라지듯 지방자치도 어떤 '자치체제'를 운영하느냐에 따라 자치의 작동방식이 달라진다. 여기서 자치체제는 자치의 틀을 형성하는 거푸집으로, 집행기관(단체장)과 의결기관(의회) 간 역학관계에 따라 여러 유형이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모든 지역들이 채택하고 있는 '대립형'이다. 주민이 선출한 단체장과 의회가 각각 집행기관과 의결기관을 구성하고 상호 견제하는 시스템이다. 반면 집행기관과 의결기관이 한 몸인 '통합형'도 있다.

여기서 집행기관은 의결기관 속으로 스며들고, 의회의장이 단체장을 겸하거나 집행기관 책임자를 선임한다. 그런가 하면, 집행과 의결기관이 아예 없는 것도 있다. '위원회형'이 그것으로 집행과 의결기능 양자를 위원회가 수행한다. '타운 미팅형'도 있다. 주민이 모여 정책을 결정하는 체제로 직접민주주의에 가깝다. 이렇듯 이들 체제 간에는 서로 다른 작동방식을 갖지만 제도적 우열은 없다. 단지 지역의 정치적 선호에 따라 채택 여부가 갈릴 뿐이다. 유럽 선진국이나 미국에서는 지역 스스로 자치체제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는 여러 형태의 자치체제가 운영되고 있다. 반면 우리 지역들은 선택할 수 없다. 국가가 법률로 '대립형' 하나만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우리는 지금껏 다른 유형의 자치체제를 경험하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 국민들은 현행체제만이 최선의 자치방식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더 나은 자치체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원론적 얘기이지만, 지방자치는 지역의 선택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이 선택에는 단체장 선출뿐만 아니라 자치체제 선택도 포함된다. 외모와 개성이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같은 옷을 입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듯이 인구, 산업 등이 천차만별인 지역들에 동일 체제를 강제하는 것은 자치의 본질에서 벗어난다. 아니 자치의 본질을 따지자면, '단체장 선출'보다도 '자치체제 선택'이 먼저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지방자치는 절반의 선택권만 주어진 '반절(半折)의 자치'인 셈이다. 다양한 자치체제의 병존은 자치 신장을 촉진한다. 무엇보다도 지역 자율성이 높아진다. 중앙의 개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지역이 동일한 자치체제로 운영된다면 하나의 법규나 지침만으로도 모두를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치체제가 지역마다 다를 경우에는 그만큼 힘들어진다. 또한 각 지역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자치체제를 선택할 것이므로 자치 효율성도 올라가게 된다.

다행히 우리 지역들도 지금의 획일적인 자치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난 2020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지역도 자치체제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실제 선택하기까지는 두 관문을 넘어야 한다. 첫 관문은 정부의 '입법적 결단'이다. 개정 자치법은 '별도의 입법'을 통해서만 지역의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두번째 관문은 지역의 '자치적 결단'이다. 동 법은 지역이 현행 자치체제를 바꾸고자 할 때는 주민투표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생각건대 두 관문을 넘는 것은 그간 잃어버린 절반의 자치 선택권을 찾는 것이다. 이는 주민들이 단체장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던 '1995년 단체장 직선제 도입'에 버금가는 '제2의 자치혁명'이라 할 수 있다.

혁명의 시작은 정부가 첫번째 관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쉬운 관문은 아니지만 지난(至難)한 일도 아닐 것이다. 정부가 체제 선택권을 주겠다고 약속한 지 4년이 지난 만큼, 지금쯤 충분한 입법 준비가 되어 있으리라 본다. 관건은 두번째 관문이다. 현행 자치체제를 변경한다는 것은 곧 '단체장 직선제를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지라 주민의 합의 도출이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별도 법률이 제정된다면 의외로 지역의 도전적 선택이 나올 수 있다. 지난 6월 어느 정부보다 자치발전에 진심인 새 정부가 출범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자치혁명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