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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체인저인가, 과도한 약속인가…3500억달러 투자펀드가 이끈 타결

박지영 기자,

김준혁 기자,

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7.31 16:43

수정 2025.07.31 16:43

[파이낸셜뉴스] 한미 양국의 통상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데에는 한국이 제시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투자펀드 중 1500억달러는 조선산업 전용 펀드로 설계해 '목적형 산업 투자'로 구조화했고, 나머지 2000억달러도 반도체·배터리 등 경제안보측면에서 중요한 산업들을 대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 없이 전략 분야 투자로 실익을 확보했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3500억달러 규모의 펀드가 우리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하다는 평가와 투자 통제권과 실질 효과,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 등을 놓고 아쉬움도 적지 않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일본보다 구조는 더 전략적.. '조선펀드' 게임체인저 될 것

31일 정부는 대미 투자펀드 3500억달러 투자 중 1500억달러는 조선 산업에 특화된 펀드로, 일본이 구성하는 5500억달러 펀드와는 차별점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이 펀드는 선박 건조부터 수리·정비(MRO), 기자재, 생태계 전반에 이르는 목적형 자금으로 한국 조선사들의 미국 시장 진출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구조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우리가 설계한 조선펀드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고 활동하는데 지원하는 펀드로 확실히 (양국에) 윈윈인 구조"라며 "국내 조선사 입장에서도 그동안 접근 안됐던 미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해주는'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머지 2000억달러는 반도체·이차전지·원전·바이오 등 전략 산업에 쓰일 예정이다. 다만 이 펀드는 구체적 운용방식이나 투자처가 아직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 여 본부장은 "미국 측도 완전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며, 앞으로 협의해 구체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향후 운영 과정에 있어서 갈등이 빚어질 리스크 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미국이 구매를 보증하고 안전한 분야에 투자하고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분야에 해야한다는 표현은 사실 없다"면서도 "다만 앞서 일본펀드 딜을 정밀하게 심층분석 해서 우리 나름대로의 안전 장치들을 일본보다 훨씬 더 많이 포함시켰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금액을 내어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일본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5500억달러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3.8%, 이 비율을 우리 GDP에 대비하면 2500억달러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미국의 상호 관세 조치가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한국과 일본의 2024년 기준 무역 적자는 규모가 유사한데, 우리는 일본보다 작은 총 3500억달러"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 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한다면 우리의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일본식 일괄 합산방식과 달리, 구체적인 산업과 사용처가 명시된 한국의 접근이 오히려 실효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발생한 투자 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간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김 실장은 "리테인(Retain) 90%라는 말을 우리 측은 '재투자' 개념으로 해석했다"면서 "미국에서 이익이 나면 과실 송금 같은 거로 한 번에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거기에 머물러야 된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실리내주고 민감한 부분은 지켰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일부 실리를 내주면서도 민감한 분야는 지켜낸 '절충형 성격'을 띤다고 분석한다.

숭실대 구기보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우리 외환보유액과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당초 2000억달러 수준의 투자가 적절했는데, 이번 합의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민간이 투자하는 구조인 만큼, 기업이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강제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액수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명지대 우석진 경제학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불확실성을 해소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우리가 원하던 수준까지는 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우 교수는 "기업 투자가 미국에서 이뤄질 경우 국내 경제에 대한 파급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교두보 확보라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aber@fnnews.com 박지영 김준혁 서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