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장욱진은 작가로서 화면을 지배하는 힘을 유지하기 위해 작품 크기를 제한했다.
그리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정감 있고 일상적인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생략과 압축, 시공간의 초월을 보여주는 화풍이 유아적이라고 오인되기도 하지만 그는 마음을 비워야 사물을 순수하게 볼 수 있다는 철학을 고수하며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했다.
그의 작품 중 상당수는 생애 마지막 15년 동안 그려졌다. 1986년 그려진 '길' 역시 그 시기 작품이다. 길이 난 마을 풍경은 작가가 즐겨 사용한 구성이나 길은 대체로 부수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길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며 해, 나무, 소, 인물 등 다양한 소재들을 담아 복잡할 수 있는 화면에 숨통을 터준다. 근경으로는 길 폭을 점차 넓혀 오면서 하단의 뛰노는 아이에 주목하게 해 평면 작품임에도 원근감과 운동감, 착시감을 동시에 획득했다.
장욱진에게는 '관어당(觀魚堂)'이라는 한 평 남짓한 크기의 정자가 있었다. 국문학자 이희승이 물고기를 볼 때 눈으로만 보지 말고 오감으로 느끼라는 의미로 지어준 이름이다. 용인 장욱진 가옥 안채 뒤 비탈땅에 네 개 기둥을 세우고 이엉지붕을 올려 지은 이 정자에 앉으면 한옥 지붕과 앞동산의 푸름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졌다고 한다. 작품의 무탈하고 이상적인 모습이 정자에서 바라본 풍경을 들려주는 듯하다.
이현희 서울옥션 아카이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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