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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자살대책위 설치해야".. OECD 자살율1위는 국가재난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05 13:12

수정 2025.08.05 13:11

생명존중시민회의 등 5개 생명단체 입법 초안 공개
생명존중시민회의 등 5개 시민사회 단체들이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에서 공동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대통령 직속 자살대책 컨트롤타워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생명존중시민회의 제공
생명존중시민회의 등 5개 시민사회 단체들이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에서 공동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대통령 직속 자살대책 컨트롤타워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생명존중시민회의 제공
[파이낸셜뉴스] 대통령 직속 자살대책 컨트롤타워 설치를 위한 입법안 초안이 5개 민간 생명단체 주도로 마련돼 공개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에서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극복하기 위한 '자살대책위원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생명단체들의 요청이 이같이 제기됐다. 지난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3.2명으로 OECD 평균 10.7명의 두 배가 넘는다.

5일 생명존중시민회의, 안실련, 자살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 한국생명운동연대, 한국종교인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자살대책위원회법' 제정의 필요성이 공식 제기됐다.

이날 주제발표자로 나선 임삼진 생명존중시민회의 상임이사는 "20년 연속 OECD 자살률 1위, 2021년 기준 세계 4위의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25.8명)은 국가적 수치"라며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구조적 재난"이라고 말했다.



임 상임이사는 "지난 2004년 이후 4차에 걸쳐 자살예방기본계획을 세워 자살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목표 달성은 단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다. 기본계획이 누락된 시기(2014~2015년)도 있고, 목표와 실제의 간극이 심한데도 국정 책임자나 주무장관의 사과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디서 누가 어떻게 줄이겠다는 세부 실행계획이 없는데 자살률이 어떻게 줄어들겠느냐"고 지적했다.

■대통령 직속 '컨트롤타워'의 강력한 정책 추진 가능
이번에 제안된 '자살대책위원회법'은 기존 법령과 달리 대통령 직속의 강력한 정책 조정기구 설치를 핵심으로 한다. 단순 자문이나 협의기구가 아니라, 관계 부처와 지방정부에 기속력 있는 권고와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자는 것이다.

위원회는 정부와 기업, 종교계, 전문가, 자살유가족 등으로 구성된 민관 생명 거버넌스 플랫폼 형태로 운영되며, 자살대책의 수립, 집행 점검 등 포괄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교체되더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독립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률로 명확한 설치·운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법안 추진은 생명존중시민회의, 안실련, 자살유가족과따뜻한친구들, 한국생명운동연대, 한국종교인연대 등 5개 단체가 구성한 '자살대책위원회법제정추진위원회(위원장 박인주 나눔국민운동본부 이사장)'가 주도했다.

지난 6월 중순부터 다섯 차례의 집행위원회를 거쳐 기초안을 만들고 법조인들과 국회 입법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총 20개 조문과 부칙 2개를 담은 법률 초안을 완성했다. 이 초안에 따르면 자살대책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되며, 연 6회 이상의 회의 개최, 반기별 대통령 보고, 지방정부 이행 점검 및 권고권한을 갖는다. 또한 인권 보호, 편견 방지, 개인정보 보호 조항도 명시되어 있다. 위원회 구성에는 정부뿐 아니라 민간 전문가, 종교계, 유가족 단체가 함께 참여해 정책의 실효성과 수용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대통령과 여당 다수 의지 확고해 입법 실현 가능성 커
추진위는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여당이 다수당일 뿐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 역시 생명존중정책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임삼진 상임이사는 "대통령령으로 위원회를 구성할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예산 확보나 지방정부에 대한 기속력이 떨어진다"며 "이제는 말이 아닌 법, 선언이 아닌 구조, 마음이 아닌 실행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자살유가족과 따뜻한친구들 김혜정 대표는 "자살 유가족은 자살 위험군 1순위다. 실업, 고립, 빈곤, 폭력, 가족 해체 등 자살의 근본 원인은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며, 유가족은 이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는 유가족에게 침묵과 낙인만을 강요한다. 이제는 유가족이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응답해야 한다. 유가족들이 지금 겪고 있는 사회적 고통을 말할 공간을 제공하라는 이 목소리가 자살대책위원회에서 국가의 책무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실련 자살예방센터 양두석 센터장은 "매일 40명이 자살로 사망하고, 800명이 시도한다. 이 수치는 국가적 비상사태다. 현재 보건복지부 중심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학생은 교육부, 군인은 국방부, 직장인은 고용노동부처럼 자살 원인은 전 부처 소관이다. 일본은 시민사회의 힘으로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총리실 주도로 부처 연계를 통해 10년간 자살률을 37% 줄였다. 한국도 대통령실에 범부처 자살대책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대 심리학과 현명호 교수는 "정부는 응급실 기반 사후관리사업, 게이트키퍼 양성 등 여러 예방 활동을 펼쳐왔으나 자살률은 여전히 세계 최상위다. 노인 자살은 여전히 높은 수치를 보이며, 군에서는 초급장교·부사관의 자살이 늘고 있다. 이는 사회적 고립, 경제적 압박, 조직 내 스트레스 때문이다. 우울증은 원인이 아닌 결과다. 자살을 '사회에 의해 내몰리는 죽음'으로 인식하고, 전면적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살예방 정책의 한계 분명… 이젠 대책으로 전환할 때"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한국종교인연대 김대선 상임대표는 "20년 넘게 1위를 기록한 한국의 자살률을 익숙해져선 안 될 심각한 불명예"라면서 "자살대책위원회법 제정으로 대통령 직속 자살대책위원회를 즉각 설치하기 위해 생명단체들이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나눔국민운동본부 박인주 이사장은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의식과 해결 의지에 달려 있다. 지금은 자살률을 낮출 수 있는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져야 할 때이고, 자살대책위원회법을 만들어서 그 시스템을 갖출 기회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1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국무총리 소속으로 자살예방정책위원회가 구성되어 운영되어 왔지만, 자살 감소라는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임 이사는 "보건복지부 중심의 자살예방 정책은 부처 간 조정력과 실행력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교육부, 고용노동부, 경찰청, 행정안전부 및 지자체의 유기적 연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경제·사회적 요인으로 인한 자살이 2023년 한 해에만 3656건(전체 자살의 25.9%)"에 달했다며 "대부분의 자살은 정신질환에 기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책 실패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또한 자살률이 폭증했던 시기(2009, 2018, 2023)가 모두 정치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번 법안 논의는 5일 정책토론회를 시작으로, 오는 9월 2일 국회 토론회까지 이어진다.


생명존중시민회의, 안실련, 자살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 한국생명운동연대, 한국종교인연대 등 5개 시민사회 단체들이 5일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에서 정책토론회를 갖고 있다. 생명존중시민회의 제공
생명존중시민회의, 안실련, 자살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 한국생명운동연대, 한국종교인연대 등 5개 시민사회 단체들이 5일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에서 정책토론회를 갖고 있다. 생명존중시민회의 제공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