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라운드 시대’ 산업개편 시급
"반기업 입법 멈춰야" 전문가들 우려
"반기업 입법 멈춰야" 전문가들 우려
한미 간 상호관세 타결이 한국 경제에 중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15% 상호관세와 3500억달러 대미 금융 패키지 투자로 요약되는 결과에서 한국 경제의 취약점과 위협이 명확히 확인됐기 때문이다. 유예 종료 하루 전 전격 타결된 '협정문 없는' 대미 관세는 13년 전 한미가 합의한 자유무역협정(FTA), 지난 30년의 세계무역기구(WTO) 질서를 무력화하고 오직 강대국 미국이 지배하는 룰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관세가 교역의 질서를 바꾼 것 이상으로 한국 경제와 산업의 질서를 뒤흔들 것"이라며 대미 투자 쏠림에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황폐화를 막아낼 중대하고 시급한 정책 대응이 우선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10일 파이낸셜뉴스는 경제·산업·통상 전문가들에게 '관세 타결이 한국 경제에 어떠한 숙제를 안겼는가'를 물었다.
'트럼프식 관세'가 한국 경제에 던진 숙제에는 경제체질의 대전환과 산업 구조개혁이 관통한다. 핵심산업 고도화와 시장 다변화, 인공지능(AI) 전환(AX)과 혁신, 산업 공동화 위기로 요약된다.
조선·반도체 등 제조업 역량이 한국의 '방패'였다면 자동차·반도체에 편중된 수출 시장은 우리를 겨냥한 '창'이었다. 사회 갈등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미국산 쌀·소고기와 같은 농축산물 시장 개방, 2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반도체·자동차·조선·석유제품·철강 등의 제한된 주력제품 라인업, 그것도 미·중에 편중된 시장은 강점과 기회에서 지금은 치명적 약점이 됐다. 양주영 산업연구원 경제안보실장은 "한국의 주력시장이 보호무역주의에 막혔다"면서 제조업 공동화를 차단하고 위협을 기회로 살려내는 비상한 정책을 주문했다.
1500억달러 규모의 한미 조선업 투자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는 미국 시장에 밸류체인을 새로 구축하며 대체불가한 독보적인 조선업의 경쟁력으로 미국 시장을 확장할 기회다. 그러나 한 해 국가 예산의 70%에 이르는 대미 제조업 투자에 힘을 쏟다보면 가뜩이나 취약해진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는 빨라진다. AI 산업과 상용 역량 부족에 따른 시장 종속, 근원적인 제조 경쟁력을 상실할 위험과 생산과 일자리를 사라지게 하는 위협 요인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20~30년간 별 변화 없이 해오다 역동성과 선도력이 떨어진 기존 주력산업들이 (관세폭탄에) 가장 세게 두드려 맞은 것"이라고 했다.
관세 타결은 끝이 아니라 도전과 위협의 첫 장이다. 장밋빛 기대만 해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경고장이자 산업·경제 재편의 골든타임을 더는 놓치지 말라는 독촉장일 수 있다. 구조적 저성장과 생산성 둔화, 글로벌 경쟁력 약화, 주력산업 성숙과 신산업 창출 부진, 산업 역동성 하락 등 경쟁력 저하와 성장 기반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최근 여러 싱크탱크의 경고가 같은 맥락이다.
관세 타결 후 주력 수출과 대미 투자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과 시장을 확장하는, 국내 경제로 환류해야 한다는 데 전문가의 의견은 일치한다. 미국은 잃어버린 반도체·조선 등 제조업 밸류체인을 구축하기 위해 자본과 인재를 빨아들이고 독보적인 AI 기술에 더한 공급망을 완성할 것이다. 한정된 재원과 역량이 미국에 전적으로 투입되는 만큼 국내 산업은 상대적으로 황폐화, 공동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경제·기술 대국 중국과의 사이에 낀 한국은 생존이 걸린, 비상한 시기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반기업 규제와 반시장 입법을 쏟아내는 여당과 정부의 정책은 우리의 내외부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이라며 "오른손은 투자를, 왼손은 규제를 가리키며 성장하자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박지영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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