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브로드웨이를 넘어, 서울로 온 위대한 꿈[이 공연]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13 14:45

수정 2025.08.17 13:50

신춘수, 아시아 최초 총책임한 브로드웨이 흥행 뮤지컬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파이낸셜뉴스] 흰색 슈트를 입은 한 남성이 통 창 너머 강 건너편 녹색 불빛을 바라본다. 순간 무대가 마술처럼 전환되고, 미국 중서부 출신 순박한 청년 닉 캐러웨이가 객석을 향해 독백을 한다. 이어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녀 앙상블과 함께 신나게 오프닝 넘버 ‘로어링 온’을 부르며 1920년대 재즈 시대, 파티가 끊이지 않았던 뉴욕 황금기로 관객을 초대한다.

‘위대한 개츠비’는 오디컴퍼니 신춘수 프로듀서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리드 프로듀서(총책임자)를 맡은 화제작이다. 영국 웨스트엔드를 거쳐 마침내 한국에 상륙한 이 작품이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정식 개막했다.



금수저 여자를 사랑한 흙수저 남자의 좌절된 아메리칸 드림

20세기 미국 문학의 대표작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금수저 여자를 사랑한 흙수저 남자의 좌절된 아메리칸 드림을 화려한 재즈 선율과 춤, 고해상도 LED 영상을 활용한 호화 세트와 겹겹이 변화무쌍한 무대 장치 그리고 인간 욕망의 이면을 파고드는 서사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감각적 과잉, 감정적 깊이 부족” 등의 외신의 다소 박한 평가와 달리 “엔터테이닝” “훌륭한 가창력” “멋진 연기와 화려한 무대” 등 관객의 호평을 얻은 이 작품은 원작이 뮤지컬의 소재로 얼마나 적합한지를 눈부시게 증명해낸다.

특히 군더더기 없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인물들의 다층적인 시선이 돋보인다. 원작은 닉 캐러웨이가 1인칭 시점으로 사건을 회상하는 구조나 뮤지컬에서는 꿈을 쫒는 낭만주의자 개츠비를 비롯해 결혼생활이 불행한 개츠비의 사랑 데이지, 현대 여성을 상징하는 데이지 친구 조던, 가난한 정비공 조지와 화려한 삶에 대한 욕망을 부도덕하게 실현 중인 그녀의 아내 머틀 그리고 데이지 남편 ‘금수저’ 톰 등 각 캐릭터의 시각이 교차하며 관객의 몰입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음악은 “모든 곡이 킬링 넘버”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화려한 재즈 리듬과 역동적 안무가 어우러진 ‘뉴 머니’와 개츠비와 데이지의 감정을 감미로운 멜로디에 실은 ‘마이 그린 라이트’ 그리고 공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나 전혀 다른 감정적 여운을 주는 ‘로어링 온’ 등 듣는 즉시 귀에 착 감긴다. 또 찰스턴, 재즈, 보깅, 탭댄스가 어우러진 군무는 시선을 압도하고, 토니상 후보에 오른 세련된 의상과 이를 돋보이게 하는 조명 디자인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15일 서울 서초구 솔빛섬 무드서울에서 열린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서울 론칭 쇼케이스 '퍼스트 룩(FIRST LOOK)'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15일 서울 서초구 솔빛섬 무드서울에서 열린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서울 론칭 쇼케이스 '퍼스트 룩(FIRST LOOK)'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뮤지컬의 강점인 화려한 쇼의 속성을 지닌 이 작품은 단지 볼거리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욕망과 계급 문제, 이상과 현실의 간극 등 원작의 주제의식도 제법 잘 드러난다. 특히 무대가 화려하고 춤과 노래가 신날수록 그 슬픔의 정서와 씁쓸함이 대비를 이루며 씁쓸함을 안긴다.

한국 프로듀서의 작품이지만 매우 미국적인 스타일을 가진 이 작품은 배우들의 호연 또한 돋보인다. 뮤지컬 ‘컴퍼니’로 제75회 토니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제이 개츠비 역의 매트 도일은 섬세한 연기로 개츠비의 순수한 열정과 허무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특히 자수성가한 개츠비가 데이지의 사촌인 닉에게 그녀와의 만남을 부탁하며 부르는 감성적인 솔로 ‘포 허(For Her)’는 도일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돋보인다.

데이지 역의 센젤 아마디 역시 매력적인 데이지를 완성했다. 특히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시절, 상류층의 예쁜 꽃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데이지의 복잡한 내면을 담아낸 넘버 ‘뷰티풀 리틀 풀’로 가창력을 뽐낸다. 다만 이 곡은 개츠비의 비극적 운명 이후 그녀의 내면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즉시 공감가지 않는 면이 있다. 흙수저와 금수저의 갈라진 운명에 대한 닉의 지적이 좀 더 피부와 와닿기에 금수저 데이지의 내면을 들여다 볼 여유가 당장 생기지 않기 때문. 하지만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그 시절, 데이지의 남은 삶이 살아있지만 죽은 상태와 유사할 것이라는 점을 곱씹어보면, 이 작품의 주요 넘버로 꼽힐 만하다.

개츠비와 닮은 신춘수 프로듀서의 성공적 브로드웨이 진출작

소설을 무대용 대본으로 성공적으로 각색한 케이트 케리건은 도록을 통해 “처음부터 서울 무대를 염두에 뒀기에 100년 전 미국 소설이 오늘날 한국 관객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자문했다”고 밝혔다. 그는 “계급 상승을 향한 갈망, 즉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영화 ‘기생충’의 주제와 다름없고, 사회 및 가정 내에서 조용히 고통받는 인물들의 서사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와도 맞닿아있다”며 세대를 초월하는 꿈과 욕망, 사랑과 상실의 이야기에 관객이 공감해주길 바랐다.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꿈을 향해 달려간 제이 개츠비는 브로드웨이에서 새 역사를 쓴 신춘수 프로듀서와 겹쳐진다. 신 대표는 지난 2014년 래퍼 투팍의 삶을 소재로 한 뮤지컬 ‘할러 이프 야 히어 미’(2014)와 ‘닥터 지바고’(2015)로 브로드웨이 진출을 꿈꿨으나 흥행 부진의 아픔을 겪었다. 그는 10년 만에 ‘위대한 개츠비’로 자신의 오랜 꿈을 이뤘다. 이 작품은 2024년, 전 세계 최초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려 개막 직후부터 3주 연속 주간 매출 100만 달러를 넘겨 '원 밀리언 클럽'에 입성했다.이후 주간 매출 260만 달러를 돌파하며, '1761석' 대형 극장인 브로드웨이 씨어터의 6년 만의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 올해 4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도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 매력을 증명했다.

이번 서울 오리지널 프로덕션은 그 경험을 토대로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신춘수 대표는 6일 GS아트센터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보다 아름다운 프로덕션”이라며 “조명·의상 등 모든 부분에서 섬세함을 더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1일 신 대표의 모친상 소식이 타전되면서, 꿈을 이룬 이 공연의 무대 밖 이야기가 또다른 여운을 남겼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제이 개츠비 역의 배우 메트 도일(Matt Doyle)과 뷰캐넌 역 센젤 아마디(Senzel Ahmady)가 6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제이 개츠비 역의 배우 메트 도일(Matt Doyle)과 뷰캐넌 역 센젤 아마디(Senzel Ahmady)가 6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출연 배우 매트 도일(제이 개츠비 역), 센젤 아마디(데이지 뷰캐넌 역), 제럴드 시저(닉 캐러웨이), 엠버 아르들리노(조던 베이커 역), 제나 드 월(머틀 윌슨 역), 웨스 윌리엄스(톰 뷰 캐넌 역), 텔리 세션스(조지 윌슨 역), 에드 스타우덴마이어(울프심 역)가 6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출연 배우 매트 도일(제이 개츠비 역), 센젤 아마디(데이지 뷰캐넌 역), 제럴드 시저(닉 캐러웨이), 엠버 아르들리노(조던 베이커 역), 제나 드 월(머틀 윌슨 역), 웨스 윌리엄스(톰 뷰 캐넌 역), 텔리 세션스(조지 윌슨 역), 에드 스타우덴마이어(울프심 역)가 6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