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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청년세대가 그리는 새 시대는 '미래지향 협력' [종전 80년 광복 80년 (下)]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14 18:18

수정 2025.08.14 18:18

청년 문화 교류·여행 경험 등
한국인, 대일 호감도 크게 증가
한일 노선 증편·K콘텐츠 인기
한국 방문 일본인 400만명 전망
李대통령 방미 앞서 23일 방일
민감현안 대신 상호이익 방점
한일 청년세대가 그리는 새 시대는 '미래지향 협력' [종전 80년 광복 80년 (下)]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강제징용, 독도 등 과거사 대신 경제안보·기술·청년 교류가 주된 내용이 될 전망이다. 정치갈등의 반복 속에서도 양국이 관계의 중심을 실익과 협력으로 이동시키는 '외교 패러다임 전환'이 가시화됐다는 평가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폭발적으로 회복된 교류와 청년층의 문화·경제 네트워크가 그 동력이다.

■섞이는 청년들, 한일관계 새로 그린다

특히 최근 20~30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양국 관계의 무게추는 빠르게 경제·문화·실용 교류로 옮겨가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지난 6월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 국민 61%가 "과거사보다 미래지향 협력이 우선"이라고 응답했으며, 20·30대에서는 그 비율이 70%를 웃돌았다.



한국인의 대일 호감도 증가는 2020년 바닥을 찍은 이래 5년간 12.3%에서 63.3%로 무려 5배 증가했다. 이는 대미 호감도(77.5%)에 근접한 수치이고, 대중 호감도(25.6%)와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손열 EAI 원장은 "2013년부터 진행한 인식조사 시작 이래 올해 처음으로 긍정적 인상이 부정적 인상을 앞서는 골든크로스를 기록했다"며 "청년층의 문화 교류, 스타트업 협업, 여행 경험이 대일 호감도를 견인했다. 미중 전략경쟁 등 국제 환경 속에서 협력 필요성이 재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와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약 882만명으로, 전년 대비 26.7% 늘어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외국인 방문객(약 3690만명) 중 비중은 24%에 달한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558만명)보다 무려 57.9% 증가한 수치다. 엔저(엔화 약세) 효과, 항공편 확대, 지방 소도시 관광 붐 등이 맞물린 결과다.

반대로 일본에서 한국을 찾은 방문객도 가파른 회복세를 보인다. 2024년 방한 일본인 관광객은 약 320만명으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대비 85% 수준까지 회복했다. 항공사들의 한일 노선 증편과 K콘텐츠 인기에 힘입어 올해는 350만명 돌파가 유력하며 400만명도 넘보고 있다.

K콘텐츠 소비층은 중고생부터 30대 직장인까지 전 세대로 확산됐다. 한국 내 일본어 학습자도 2024년 22만명으로 10년 전보다 35% 증가했다. 일본 유학을 선택한 한국인은 같은 기간 20% 늘었고, 일본 내 한국 유학생은 2만명을 넘겼다. 지방 도시의 관광·축제에서는 K푸드 부스나 한국 공연팀 초청이 일상화됐다. 일본 편의점과 마트에선 인기 있는 한국 제품을 모아 주기적으로 '한국 프로모션'을 연다.

와세다대에 재학 중인 사야씨는 "주 2일은 한국식으로 먹는다"며 "유튜브를 보며 직접 조리를 하거나 배달 앱으로 간단하게 시켜 먹을 수 있다. 한국식이라기보다는 점점 일반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정상회담 '실용외교 정착' 시험대

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24일 방미에 앞서 23일 일본을 먼저 방문,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한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이런 흐름을 시험대에 올릴 자리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은 지난 6월 셔틀외교를 조속히 재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면서 "이번 방일을 통해 양 정상 간 개인적 유대와 신뢰 관계가 더욱 깊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회담 의제는 경제안보, 첨단기술, 기후변화 대응, 청년 인적교류 확대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외교 소식통은 "민감한 과거사 논의는 물밑에서 진행하되, 공개 의제는 미래협력에 집중하는 쪽으로 조율되고 있다. 일본 쪽에서도 기시다 내각 때부터 논의한 협력 의제를 더욱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런 접근이 단기적으로는 양국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역사 문제 해결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제징용 배상, 독도 영유권, 역사교과서 기술 등 민감현안은 여전히 양국 관계의 불씨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사과-반발' 반복 구조 대신 실익과 상호이익을 최우선에 둔 해결방식을 찾자는 목소리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전문가들은 한일 관계의 세대교체를 외교 패러다임 전환의 기회로 본다.
심승규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는 "실질 교류가 계속된다면 과거사 갈등이 반복돼도 민간 차원의 네트워크가 관계를 지탱할 것"이라며 "차세대 지도자는 기존 외교문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해법으로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경제계에서는 공급망 재편, 탄소중립, 인공지능(AI)·우주기술 협력 등 미래 산업 과제에서 양국이 상호보완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관계자는 "정치 이슈와 별개로 기업 간 협력의 필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k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