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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호우 한달] ④ 피해 반복 막으려면…기후 변화 탄력 대응해야

연합뉴스

입력 2025.08.17 07:01

수정 2025.08.18 10:08

전문가 "산사태 취약지 기준 개선하고 실시간 위기 경보 세분화 필요" 지방하천 구간별 홍수 빈도 재설계…예방 정책 전환도 방법
[극한호우 한달] ④ 피해 반복 막으려면…기후 변화 탄력 대응해야
전문가 "산사태 취약지 기준 개선하고 실시간 위기 경보 세분화 필요"
지방하천 구간별 홍수 빈도 재설계…예방 정책 전환도 방법

(전국종합=연합뉴스) 올해도 수마(水魔)에 속절없이 당했다. 전국 곳곳이 갈기갈기 찢기고 평범한 가족들이 일상을 뺏겼다.

매번 수방 대책을 세우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지만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달 광주에 하루 동안 역대 최고인 411.9㎜의 물폭탄이 떨어지는 등 극한 호우가 우리나라를 강타했다.

전국에서 29명이 목숨을 잃고 1명이 실종되자 사람들은 이번 비를 '괴물폭우'로 불렀다.

재산 피해도 1조3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각 지자체는 잠정 집계했다.

산청 생비량면…흘러내리는 마을 (출처=연합뉴스)
산청 생비량면…흘러내리는 마을 (출처=연합뉴스)

◇ 산사태 취약지역 지정 안 된 곳에서 인명피해
지난달 19일 오후 경남 산청군의 한 마을.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야산 중턱에 있는 마을 전체가 주저앉아 폭격을 맞은 듯 쑥대밭이 됐다.

마을 아래쪽에서 산사태가 나 지반이 꺼지면서 주택 24채 모두 토사에 파묻혔고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날 하루 산청군에는 300㎜에 육박하는 폭우가 쏟아졌고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12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그러나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지정돼 관리된 곳은 단 1곳에 불과했다.

다음날 괴물폭우는 경기북부를 기습했다.

20일 새벽 경기 가평군 조종면의 한 캠핑장은 시간당 최대 76㎜의 폭우가 내리면서 산사태 피해를 봤다.

주말을 즐기러 이곳에 온 일가족 4명은 일기예보와 달리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자 텐트를 나와 대피했고 이 과정에서 불어난 하천물에 휩쓸렸다.

고등학생 큰아들은 다행히 119에 구조됐지만 40대 부부와 중학생 둘째 아들 등 3명은 사고 당일 그리고 실종 6일째와 11일째 차례로 숨진 채 발견됐다.

가평군에서는 이날 산사태 등으로 7명이 숨졌고,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3곳에서 인명피해가 난 것으로 파악됐다.

산청군 수해 지역을 답사한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벌목지, 임도 등 사람이 산을 건드린 곳을 중심으로 산사태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처참한 캠핑장 (출처=연합뉴스)
처참한 캠핑장 (출처=연합뉴스)

◇ 기후변화 따라 산사태 대응 체계 재점검 필요
이번 재난을 계기로 기후변화에 맞춰 산사태 대응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림청은 관련 법에 따라 5년마다 산림 관리 계획을 세우고 매년 전국의 산사태 우려 지역을 기초 조사해 해당 지자체에 통보한다.

해당 지자체는 전문가들이 산림 지형, 토양 함수 등 9개 항목을 평가한 뒤 위원회를 열고 A∼D 등급을 매겨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고시한다.

이번에 피해가 큰 산청군은 올해 195곳을, 가평군은 311곳을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가평군의 경우 20일 하루 동안 약 70건의 크고 작은 산사태가 발생했고, 인명피해가 난 곳은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장석환 대진대 스마트건축토목공학부 교수는 "시간당 50㎜ 이상 강우 빈도가 높아지는 등 기후환경이 변한 만큼 산사태 취약지역 평가 때 강우 강도도 포함해 기준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사태가 발생하면 반죽 같은 흙이 시속 30∼40㎞ 속도로 밀려오기 때문에 대비하지 않으면 피해가 어렵다"며 "산사태 위험도 호우 특보처럼 지역을 세분화해 실시간으로 알리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바다 된 농경지 (출처=연합뉴스)
물바다 된 농경지 (출처=연합뉴스)

◇ 인구 밀집지역·취약지 지방하천 '홍수 200년 빈도'로 강화 필요
이번 폭우는 도심과 농경지 등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하천물이 급격히 불면서 길 가다 급류에 휩쓸리는 인명 피해도 났다.

하천물이 넘치거나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인명 피해가 발생한 가평군 조종천은 2023년 11월 이미 준설 작업이 이뤄진 구간이지만 범람을 막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기후 상황이 변한 만큼 하천 정비 때 설계 기준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통상 국가하천은 200년 빈도 홍수에 견디도록 시설을 설계하지만 지방하천은 80∼100년 빈도 홍수에 대비한다.

장석환 교수는 "극한 호우가 잦아진 만큼 지방하천 홍수 빈도를 강화해야 하는데 수십㎞에 달하는 전 구간을 정비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만큼 인구가 많은 구간이나 취약지구부터 200년 빈도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빗물에 잠긴 트럭 (출처=연합뉴스)
빗물에 잠긴 트럭 (출처=연합뉴스)

◇ 도심 녹지 등 투수층 확보 효과도 방법
지자체마다 장마를 앞두고 배수로를 정비해 도심 홍수에 대비하고 있지만 최근 추세인 극한 호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도심 침수 피해가 일상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종필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도시가 개발되면 녹지 등 비를 흡수하는 투수층이 사라지는데, 이러면 빗물이 우수관을 통해서만 한꺼번에 처리될 수밖에 없어 도심이 침수되고 하천이 범람한다"며 "도심 곳곳에 녹지 등 투수층을 확보하고 저류지 등을 만들면 비용 대비 효과가 클 것"이라며 설명했다.


이수곤 교수는 "정부·지자체가 자연재해 예방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지진을 예측불가능한 재해로 인식하고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일본처럼 우리도 집중호우, 태풍 등 자연재해를 100% 막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하고 피해를 막거나 줄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수정한 것도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정훈 김도윤 천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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