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재산은 부동산, 예금, 주식 등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재산뿐만 아니라 보험금,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채권 등을 아우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엄청나게 많은 상속재산분할 사건들이 법원에 접수되는데, 특히 피상속인이 많은 재산을 남겨두고 사망한 경우 더욱 그러하다. 만약 피상속인이 자신의 모든 유산을 상속인들의 유류분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속인들에게 적절히 분배해 주었거나 제3자에게 기부하는 취지의 유언을 남겼다면 상속재산분할 사건으로 법원에 접수되는 일은 없었을 테고 그러면 상속인들끼리 서로 얼굴 붉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현명한 선택을 하는 피상속인은 그리 많지 않고, 나아가 피상속인이 유언을 할 틈도 없이 갑자기 사고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
실무를 하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문제가 피상속인이 공동상속인이 될 사람(배우자나 자녀)이 아닌 자녀의 배우자나 그 자녀(피상속인의 입장에서는 며느리나 손자녀, 이하 ‘손자녀 등’이라 한다)에게 자신의 재산 일부를 증여했을 때 이를 해당 공동상속인의 특별수익으로 볼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이렇게 피상속인이 손자녀 등에게 직접 증여했을 때 그 금액이 크지 않을 경우에는 그 증여가 공동상속인의 특별수익에 포함되는지 여부만 문제 되지만 그 금액이 상속재산과 비교했을 때 작지 않은 경우라면 다른 공동상속인의 유류분 침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손자녀 등에 대한 증여를 공동상속인에 대한 증여로 의제할 수 있다면 그 증여가 다른 공동상속인의 유류분을 침해한 경우 아무런 조건이나 기한 제한 없이 해당 공동상속인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공동상속인이 아닌 제3자에 대한 증여는 상속 개시 전 1년 이내에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만 유류분반환청구가 가능한 것이 원칙이고, 피상속인과 제3자가 유류분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의도가 있었던 경우에만 1년 이전의 증여에 대해서도 유류분반환청구가 가능하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아주 간단한 사례를 예로 들어보면, 피상속인에게는 아들(A)과 딸(B)이 있었고, 배우자는 사망하였으며,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은 100억 원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피상속인은 사망하기 5년 전에 아들의 배우자(C)와 자녀(D)에게 50억 원씩 미리 증여를 해주었다. 이러한 경우 상속재산 100억 원은 A와 B가 법정상속분인 1:1의 비율로 50억 원씩 상속하게 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만약 피상속인이 C와 D에게 한 증여를 A에 대한 특별수익으로 볼 수 있다면 간주상속재산은 200억 원[= 상속재산 100억 원 + 특별수익 100억 원(= 50억 원 + 50억 원)]이 되고, 그 재산을 A와 B가 법정상속분인 1:1의 비율로 100억 원씩 상속하게 되는데 이미 A는 특별수익으로 100억 원을 받아 간 것으로 의율되므로(C와 D에게 한 증여가 A에 대한 특별수익이 됨) 현존 상속재산은 모두 B에게 상속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피상속인이 손자녀 등에게 한 증여가 공동상속인에 대한 특별수익에 포섭되는지에 따라 상속 결과가 달라지게 되는데 판례는 “증여 또는 유증의 경위, 증여나 유증된 물건의 가치, 성질, 수증자와 관계된 상속인이 실제 받은 이익 등을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피상속인으로부터 상속인에게 직접 증여된 것과 다르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상속인의 직계비속, 배우자, 직계존속 등에게 이루어진 증여나 유증도 특별수익으로써 이를 고려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7. 8. 28.자 2006스3 결정 등 참조). 증여가 당초 공동상속인에게 이루어질 것이나 세금 문제 때문에 형식적으로 손자녀 등에 이루어진 경우, 증여된 물건의 가치가 손자녀 등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거나 공동상속인에게만 의미 있는 물건인 경우, 해당 증여로 인하여 실제 이익을 받는 자가 공동상속인인 경우 등을 입증하면 손자녀 등에 대한 증여를 공동상속인에 대한 특별수익으로 의율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법원 실무는, 손자녀 등이 공동상속인과 같은 주소에서 동거하면서 경제적 공동체로 생활하고 있는지, 손자녀 등에게 별도로 재산을 증여할 특별한 유인이나 동기가 있었는지(공동상속인이 이미 거액의 부동산을 증여받은 상황에서 손자녀 등에게 별도의 증여를 할 이유가 있었는지), 다른 공동상속인들이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실질적으로 공동상속인 가족에게 준 금액으로 인식하였는지), 손자녀 등에게 증여한 금액의 액수가 얼마였는지, 공동상속인과 손자녀 등에게 증여한 금액을 다 합할 때 각 집안에 증여한 금액 합계가 서로 비슷한지 등을 살펴보고 손자녀 등에게 한 증여가 ‘실질적으로 상속인에게 증여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이 문제는 유류분반환청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다시 아주 간단한 사례를 예로 들어보면, 피상속인에게는 아들(A)과 딸(B)이 있었고, 배우자는 사망하였으며,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은 100억 원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피상속인은 사망하기 5년 전에 아들의 배우자(C)와 자녀(D)에게 200억 원씩 미리 증여를 해주었다. 이러한 경우 만약 피상속인이 C와 D에게 한 증여를 A에 대한 특별수익으로 볼 수 있다면 유류분의 기초가 되는 재산은 500억 원[= 상속재산 100억 원 + 특별수익 400억 원(= 200억 원 + 200억 원)]이 되고, B의 유류분은 125억 원(= 500억 원 × 1/4)이 되는데 현존 상속재산은 100억 원 밖에 남아있지 아니하므로 B는 A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게 된다. 만약 피상속인이 C와 D에게 한 증여를 A에 대한 특별수익으로 볼 수 없다면 B는 A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사망한 후 상속인들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송사(상속재산분할심판 또는 유류분반환청구)를 막기 위해서는 손자녀 등에게 따로 증여를 하더라도 공동상속인과는 별개로 손자녀 등에게 별도로 재산을 증여할 특별한 유인이나 동기를 만들어야 하고(예컨대, 유학자금 등), 해당 금액이 공동상속인 가족의 전체적인 이익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손자녀 등의 독자적인 이익으로 귀속되는 것이라는 점을 입증할 소명자료를 잘 챙겨놓아야 할 것이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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