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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임금체계 수술이 먼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17 18:32

수정 2025.08.17 20:35

정부 이르면 내년 하반기 시행
직무급 도입 등 선결과제 산적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연내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를 추진해 이르면 내년 하반기 시행할 것이라고 한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추진이 포함돼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말 그대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 동일한 처우를 보장해주는 것을 뜻한다. 고용 형태나 성별에 관계없이 같은 임금과 복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취지에 공감 못할 이는 없을 것이다.

같은 일을 하고 보수에 차이를 두는 것은 원칙적으로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것도 문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379만원, 비정규직은 204만원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거의 절반 수준으로 격차는 175만원에 이른다. 5년 전 143만원 차이가 났던 것과 비교해도 상황이 더 악화됐다. 격차는 매년 벌어지는 추세인데 어떻게든 개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일괄적인 임금 상향 평준화가 가져올 후폭풍 등 난제가 산처럼 쌓여 있다는 데 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노동 현장의 후진적인 관행은 놔두고 동일한 임금만 강제할 경우 야기될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의 경우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뒤처진 제도부터 손질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의 우선순위부터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노동의 가치에 대한 판단도 불분명하다. 기술, 노력, 책임, 작업 조건을 비롯해 근로자의 학력, 경력, 근속연수 등을 고려하겠다지만 분쟁의 소지가 다분하다. 같은 업무여도 숙련공과 비숙련공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동일노동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 작업이 순조롭지 못하면 직무 가치를 비교하고 결정하는 일이 법원 몫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가능하려면 직무 가치와 상관없이 해가 바뀌면 무조건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업무 성격과 중요도, 난이도, 숙련도에 따라 임금을 산정하는 직무급, 성과급제는 노동개혁의 핵심과제다. 기존 호봉제의 문제는 수도 없이 지적됐다. 정부도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임금체계 개편에 공감했다. 하지만 매번 귀족 강성 노조에 밀려 실현되지 못했다.

열악한 비정규직 처우는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과잉보호를 줄이고, 노조가 기득권을 내려놔야 길을 찾을 수 있다. 기업의 한정된 고용비용을 감안하면 대기업 정규직의 고임금은 비정규직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대기업은 신규 채용을 못하고,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을 못 찾는 양극화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

결국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선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획일적인 임금체계 수술부터 서둘러야 하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이익만 우선시하는 강성 노조를 설득하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정규직 특권의 폐해는 청년들에게도 심각하다. 정규직 철옹성 벽에 막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냥 쉬는 무기력한 20대가 40만명이 넘는다. 사회 전반의 활력을 높이고 시장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노동개혁이 우선돼야 한다.
무리한 노조 편향 입법은 자제하고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