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에 대한 위탁관계 인정 안 돼"…2심 횡령죄 무죄 판단
대법 "조리·신의성실 원칙에 비춰 재산 보호·관리자로 봐야"
대법 "조리·신의성실 원칙에 비춰 재산 보호·관리자로 봐야"
[파이낸셜뉴스] 상속인 몰래 사망한 주지스님의 계좌에서 돈을 빼낸 사찰 승려와 관리자를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횡령, 사전자기록 등 위작·위작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A와 B씨에게 횡령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의 한 사찰 주지스님을 지낸 C씨는 지난 2022년 3월 코로나로 사망했다. A씨는 해당 사찰의 원주(절의 사무를 주재하는 사람)로 C씨의 계좌를 관리해왔는데, C씨 계좌에 있던 돈 2억5000만원을 후임 주지스님인 B씨에게 전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두 사람이 공모해 C씨 상속인의 재산을 횡령했다고 보고 횡령 혐의도 적용했다.
1심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B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두 사람의 형량을 유지하면서도 횡령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한 때 성립하는데, A씨와 상속인 사이에 C씨의 재산에 대한 위탁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C씨와 A씨 사이의 계좌에 대한 위탁관계는 C씨 사망으로 종료됐다고 할 것"이라며 "망인이 사망하고 난 이후에 상속인과 A씨 사이에 해당 계좌에 보관된 돈을 관리하기로 했다는 등 계약을 체결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는 위탁관계에 의해 C씨 계좌에 입금된 돈을 상속인을 위해 보관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위탁관계는 반드시 계약에 의해 설정될 것을 요하지 않고, 사무관리·관습 등에 의해서도 성립될 수 있다'는 기존 법리를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A씨는 C씨의 위임으로 C씨 계좌에 연결된 통장, 현금카드, 도장 등을 보유하면서 계좌에 입금된 돈을 보관하고 있었다"며 "A씨는 망인의 위임에 따라 계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로서, 조리 또는 신의성실 원칙에 비춰 피해자의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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